美기업들, 트럼프 관세에도 4년래 최고 실적…"소비는 양극화"

해외

이데일리,

2025년 11월 09일, 오전 11:56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규모 관세 정책에도 4년 만에 가장 빠른 실적 성장세를 기록했다. 러셀3000·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의 중대형 기업 다수가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냈다. 미 경제의 저력을 재확인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실적 호조에 따른 수혜가 고소득층에 집중되며 소비 양극화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AFP)


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모건스탠리는 미 주식시장 전체 벤치마크인 러셀3000 지수의 연간 평균 이익성장률이 올해 3분기에 11%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직전 분기(6%)보다 크게 높아진 것은 물론, 2021년 3분기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라고 FT는 부연했다.

도이체방크도 대형주 중심의 S&P500지수 11개 업종 중 6개에서 올해 3분기 평균 수익이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전분기엔 금융과 대형 기술주만 증가했으나, 3분기 들어선 산업재, 부동산, 에너지 등으로 성장 범위가 확대했다는 진단이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코스틴 주식 전략가도 “대다수 기업들이 3분기 실적을 발표했고, 지금까지의 실적은 컨센서스 전망치를 뛰어넘은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데이터제공업체 펙트셋의 분석가들은 올해 4분기 실적 역시 7.5%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기업들이 원가 상승, 공급망 위기 등의 위기에 내몰릴 것으로 우려됐다. 하지만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비용을 흡수하고, 내수 소비 역시 꾸준히 뒷받침해준 덕분에 위기 상황을 돌파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일본·유럽연합(EU)·중국 등과 무역합의에 도달한 것도 3분기 실적 개선에 기여했다.

포드·제너럴모터스(GM) 등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수입부품 관세 유예로 충격을 줄였고, 전력·부동산·산업재 분야 역시 매출 성장과 이익 확대가 두드러졌다. NRG에너지는 데이터센터 수요 확대의 수혜를,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여행수요 회복에 따른 실적 증가를 누렸다.

골드만삭스, 시티그룹, JP모건체이스 등 은행들도 금융시장 변동성과 거래 활성화에 힘입어 두자릿수 이익 증가를 보였다. 빅테크의 경우 메타 등 일부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와 비용 부담으로 시장 기대를 밑도는 성적표를 내놨지만, 구글 검색·광고 사업에 힘입은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은 분석가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발표했다.

SLC 매니지먼트의 덱 뮬라키 전무는 “기업들은 관세 충격을 흡수하는 방법을 찾았으며, 소비자들은 일자리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소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호실적에 따른 수혜가 고소득층에 쏠려 소비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시간대가 발표한 11월 소비자심리지수는 3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연령·소득·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모든 계층에서 광범위하게 신뢰 저하가 나타났으나, 주식 보유액이 큰 고소득층의 소비자 신뢰도는 유일하게 11% 가량 상승했다.

이와 관련, 모건스탠리의 리사 샬렛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소득 기준 상위 40% 가구가 미국 전체 부의 약 85%를 통제하고 있으며, 이 중 3분의 2가 주식 자산”이라며 “지난 3년간 미 주식시장이 90% 넘게 오르면서, 주식 부자들의 자산이 크게 늘었다”고 짚었다. 고용시장이 다소 약해지거나 실직자가 늘어도 상위 소득층은 여전히 돈을 잘 쓰기 때문에 전체 소비가 크게 꺾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다.

실제 가공식품, 패스트푸드 등 중산층·저소득층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기업들, 그리고 의류, 가구, 자동차 등 필수적이지 않은 자유소비재(재화) 업종에선 소비자들이 고가 제품 구매를 꺼려 3분기 매출이 하락했다.

가공식품업체 크래프트 하인츠의 카를로스 아브람스리베라 최고경영자(CEO)는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소비자 심리가 수십년 만에 최악”이라고 호소했다. 도이체방크 분석가들도 “이번 실적 발표 시즌에선 소비자 중심 회사가 다른 사업체에 상품을 판매하는 회사보다 실적이 더 나빴다”고 짚었다.

당장은 미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고용지표 발표가 지연, 노동시장 및 소비자 건강과 관련해 정확한 판단이 힘든 상황이다. 민간 자료를 보면 고용시장이 아직 양호한 편으로 추정되지만, 최근 아마존·UPS·타겟 등 S&P500 소속 대기업 17여곳에서 약 8만명이 해고돼 우려도 상존한다.

샬렛 CIO는 “미국의 소비 수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을 예측하는 것보다 주식시장 자체 방향을 예측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부유층의 자산, 특히 주식이 계속 불어나면 고용률 등 노동시장 자체보다 주식시장 동향이 소비 트렌드에 더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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