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쇼트’ 버리, 헤지펀드 사실상 폐업…“시장 가치와 펀더멘털 동떨어져”

해외

이데일리,

2025년 11월 14일, 오전 05:51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2008년 금융위기 직전 미국 주택시장 붕괴를 정확히 예측하며 영화 ‘빅쇼트(Big Short)’로 유명해진 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자신의 헤지펀드인 스카이언 애셋 매니지먼트를 사실상 폐업하기로 결정했다. 버리는 시장 밸류에이션이 “시장이 기초 체력과 동떨어졌다”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마이클 버리 사이언에셋매니지먼트 창업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전자공시에 따르면 스카이언은 11월 10일부로 등록 상태가 ‘종료’(terminated)로 표시됐다. 버리는 연말까지 대부분의 자금을 청산해 투자자에게 돌려주고 다만 감사·세금 처리를 위한 소액의 유보금은 남길 예정이다.

버리는 서한에서 “내가 판단하는 증권 가치와 현재 시장의 움직임은 한동안 일치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이는 최근 AI·기술주 중심의 강세장이 버리의 가치평가와 근본적으로 어긋나 있다고 본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버리는 최근 몇 주간 엔비디아, 팔란티어 등 대형 기술주를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구글·오라클·메타 등이 엔비디아 칩과 서버에 막대한 투자를 집행하면서도 감가상각 기간을 의도적으로 늘려 단기 이익을 부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추산에 따르면 2026~2028년 사이 감가상각 비용이 약 1760억달러 적게 반영돼 기술 섹터의 회계상 이익이 왜곡될 수 있다.

버리는 이번 달 초 팔란티어에 대한 파생상품 기반 공매도 포지션을 신규 설정한 사실도 공시에서 드러났다. 팔란티어 주가는 올해만 약 130% 상승했다. 엔비디아에 대해서는 소규모 매도 포지션을 취한 것으로 확인됐다.

브루노 슈넬러 얼른캐피털 매니지먼트 전무는 로이터에 “버리의 결정은 ‘포기’가 아니라, 그가 근본적으로 판이 잘못 짜여 있다고 보는 게임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이라며 “향후 패밀리오피스 형태로 전환해 자신의 자본만 운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버리의 헤지 펀드 폐업 결정은 최근 기술주 강세 속에서 공매도 투자자들이 잇달아 어려움을 겪는 흐름과 맞물린다. 엔론 사태로 유명한 베테랑 공매도 투자자 짐 채노스는 최근 운용 조직을 축소했고, 힌덴버그 리서치는 아다니그룹·니콜라 공격 이후 올해 초 사실상 폐업했다. 미국에서 공매도 선호 상위 250개 종목은: 올해 50% 이상 급등하며 공매도 포지션에 대규모 손실 발생했다. AI 열풍으로 수익이 나지 않는 기술주들까지 급등하면서, 버리와 같은 가치 기반 공매도 전략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졌다는 분석이 많다.

나스닥의 향후 12개월 주가수익비율(Fwd PER)은 약 30배로, 최근 10년 평균(약 25배)을 크게 웃돌고 있다. 이런 시장 분위기 속에서 버리는 기술주 비중 확대로 치솟은 밸류에이션에 강한 의문을 제기해왔고, 결국 스카이언 애셋 매니지먼트를 접는 강수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버리는 소셜미디어 X에 “11월 25일부터 훨씬 더 좋은 일로 간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향후 행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개인자산 중심의 패밀리오피스 형태로 전환하거나 비공개 투자자로 활동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편, 버리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이 ‘평가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대규모 공매도에 나서 큰 수익을 올렸다. 이 과정은 마이클 루이스의 베스트셀러 ‘빅쇼트’와 동명 영화로 널리 알려졌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