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대형주 일제히 급락…“고평가 우려·재료 소멸”
이날 시장 약세는 AI 수혜주가 주도했다.엔비디아는 3.6%, 브로드컴은 4.3% 하락했다. 테슬라는 6.6% 폭락했고 로빈후드·팔란티어도 각각 8.7%, 6.6% 급락했다. FT는 “고평가된 기술주에 대한 ‘불안감(jitters)’이 다시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미국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의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기업 회사채 시장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알파벳·메타·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발행한 회사채가 약세를 보이며 밸류에이션 우려가 채권시장으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파와드 라작자다 포렉스닷컴 애널리스트는 “4월 이후 기술주는 과열 신호가 뚜렷했고, 셧다운에 따른 데이터 공백 속에서 재료도 고갈됐다”고 “시장 기대가 빠르게 식고 있다”고 평가했다. 론 알바하리 레어드노턴 CIO는 “건강한 조정 단계”라며 “AI 투자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지가 향후 관건”이라고 평가했다.
◇셧다운은 끝났지만…10월 CPI·고용 공백 여전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임시 지출안 서명으로 사상 최장기 셧다운은 종료됐지만, 핵심 경제지표 공백은 여전한 상황이다. 백악관은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고용보고서가 아예 발표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케빈 해셋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통계청 가구조사가 중단돼 10월 고용보고서는 실업률이 빠진 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 공백 속에서 미 연준의 금리 인하 판단도 더욱 어렵게 됐다.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 10월 FOMC에서 “12월 금리 인하는 ‘아직 멀었다(far from)’”고 경고한 바 있으며, 연준 내 매파의 목소리도 강해지고 있다. 수전 콜린스 보스턴 연은 총재는 “추가 완화에는 매우 높은 기준이 필요하다”고 밝혔고, 베스 해맥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는 “정책은 ‘다소 제약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는 “지난번 회의에서도 금리 인하를 지지하지 않았다”며 “12월 결정은 아직 미정”이라고 언급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12월 금리 인하 가능성은 하루 만에 62.9%에서 약 49%대로 급락했다. 밀러타박의 맷 멜레이 전략가는 “시장이 비싸면 비쌀수록 더 낮은 금리(=정책 지원)가 필요한데, 지금 연준이 속도 조절에 들어가며 투자자들이 겁을 먹고 있다”고 분석했다.
◇순환매 본격화…엔비디아 실적 향후 흐름 가를 변수
기술주가 일제히 조정을 받는 가운데 산업·에너지·금융·헬스케어 등 가치·방어 섹터는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데이비드 밀러 캐털리스트펀드 전략가는 “AI 서사가 가린 전통 섹터로 자금이 돌아오며 랠리 기반이 넓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고성장 기술주와 비교해 밸류에이션 부담이 적은 고품질 경기민감주가 재평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클 오루크 존스트레이딩 전략가는 “실적 시즌이 끝나 시장이 ‘이익 실현’에 나서고 있다”며 “한동안 주도했던 종목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순환매가 진행되는 구간”이라고 평가했다.
찰스슈왑의 케빈 고든도 FT에 “시장이 올해 주도주를 소화(digestion)하는 과정”이라며 “고평가 섹터가 투자자 불안이 생기면 가장 먼저 두들겨 맞는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기술주 조정 흐름 속에서 다음 주 발표될 엔비디아 실적이 연말 시장 방향을 가를 핵심 변수라고 입을 모은다. 루이스 나벨리에 나벨리에앤어소시에이츠 회장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전망이 강세를 유지해야 연말 랠리 가능성이 열린다”고 말했다.
JP모간은 “헤지펀드가 10월 위험노출을 크게 줄여 놓은 상황이어서, 엔비디아 실적이 강하면 연말 ‘쇼트 커버링 랠리’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쇼트 커버링’은 주가 하락에 베팅했던 투자자들이 손실을 막기 위해 되사들이면서 주가가 급반등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때문에 단기적으로 기술주 중심의 강한 되돌림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리인하 기대 후퇴에…10년물 국채금리 4bp 이상↑
뉴욕증시에서 기술주가 급락했음에도 국채 가격이 오르지 않고 동반 하락(국채금리 상승)한 것은, 시장이 전형적인 ‘위험회피(risk-off)’ 국면이 아니라 금리 인하 기대가 뒤집히는 국면에 진입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오후 4시반 기준 글로벌 국채벤치마크인 10년물 국채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4.2bp(1bp=0.01%포인트) 오른 4.121%를, 연준 정책에 민감하게 연동하는 2년물 국채금리는 2.9bp 상승한 3.595%에서 움직이고 있다.
달러는 소폭 빠지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0.3% 내린 99.19를 기록 중이다. 달러 자체 약세라기보다는 유로화와 엔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인 탓이다.
국제유가는 전날 급락 이후 소폭 반등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장 대비 0.20달러(0.34%) 오른 배럴당 58.6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국제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세계 원유시장이 내년 소폭의 공급 과잉을 보일 것으로 전망을 수정하면서 급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