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전쟁 준비"…푸틴 '학교를 병영으로’ 가속

해외

이데일리,

2025년 11월 14일, 오후 03:42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의 한 초등학교,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복무한 군인이 6~8세 저학년 학생들의 군복 착용 상태를 검사한다. 아이들은 군인의 지시에 따라 허리띠, 명찰, 단추 등을 고쳐 매며 자세를 바로잡는다. 8학년 고학년 학생들은 필수 과목으로 군대식 규율, 군사 역사, 칼라시니코프 소총 분해·조립법과 드론 조종법을 배운다. 이러한 장면들은 국영방송을 통해 보도된 뒤 러시아 전역에서 재현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차에 접어들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추진하는 ‘교육의 군사화’가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러시아 교육 과정에 군사 훈련과 전쟁 관련 과목이 필수 포함되면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AFP)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의 ‘애국 교육’ 예산은 2021년 35억루블(약 630억 7000만원)에서 2024년 500억루블(약 9010억원)로 15배 이상 폭증했다. 이를 통해 올해에만 2만 3000개 학교가 소총·수류탄 모형과 드론 키트를 교보재로 지급받았다.

지난해에는 필수 과목으로 ‘조국 방위와 안보의 기초’가 도입됐다. 이 과목은 칼라시니코프와 기관총, 대전차 로켓, 저격소총에 대한 교육은 물론, 심리전과 ‘지휘 체계의 통일’ 등의 내용을 포함한다. 새 역사 교과서에는 서방을 ‘러시아의 적’, 우크라이나를 ‘서방의 꼭두각시’로 묘사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러시아를 공격하려 시도했다는 주장이 담겼다.

러시아 국방부 산하 청소년 단체인 ‘유소년 군대’(Youth Army)는 8~18세 청소년 약 185만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군복을 입고 행사 경비를 서며 정기 군사훈련을 받는다. 러시아 정부 문서에 따르면 유치원 단계에서도 “삶의 의미는 조국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전사자 이름을 딴 ‘영웅 학교’가 전국 각지에 생겨나기 시작했고, 학교 교실에도 전사한 졸업생 사진이 걸리기 시작했다.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방송인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는 청년 집회에서 “러시아인은 평화를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승리를 위해 태어났다”고 강조하며 전쟁을 신성화하기도 했다.

전쟁 반대 발언을 한 교사가 처벌받는 일도 발생했다. 모스크바에서 교사로 일했던 나탈리아 타라누셴코는 러시아군의 전쟁범죄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7년형을 선고받아 해외로 탈출해야 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러시아 정부가 미래 전쟁에 대비해 학교 교육을 이념화하며 잠재적인 전투원 양성에 나섰음을 시사한다는 진단이다. ‘군사 애국 교육’ 강화 흐름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 시작됐으며,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확대했다.

이와 관련, 앞서 푸틴 대통령은 2023년 “전쟁을 이기는 것은 장군이 아니라 교사”라며 현역 군인들의 교사 임용 절차를 간소화하라고 지시했다. 푸틴 대통령 자신도 옛 소련 시절 청소년 공산주의 조직인 ‘피오네르’와 ‘콤소몰’ 출신이며, 당시의 집단주의·충성심 교육을 러시아 공산주의 이념의 근간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인문 교육이 국가의 전면적인 통제 하에 놓이면서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러시아 교육전문가 디마 지체르 박사는 “아이에게 총을 쥐여주고 ‘푸틴은 우리의 자랑’이라고 주입하면 비판적 사고가 마비된다”고 지적했다.

WSJ은 “어린 학생들이 이제 언어·역사보다 전투 능력을 중요하게 배우고 있다. 아동기부터 명령에 복종하는 국민을 양성하려는 정책 변화는 푸틴 대통령이 세운 장기전 체제의 교육 버전”이라며 “크렘린궁의 목표는 단순한 애국심 주입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전쟁이 일어날 때를 대비한 세대의 구축”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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