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백인 농부들이 ‘대량 학살’의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인쇄물을 보여주고 있다.(사진=AFP)
◇트럼프 전면 보이콧에도 유럽·亞 지도자 대거 참석
18일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는 총 42개국이 참석을 확정했다. 이번 회의는 아프리카 최초 G20 정상회의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으나, 미국과 중국 지도자가 모두 불참을 선언해 외교적 상징성이 대폭 후퇴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남아공 내 백인 탄압 및 인권 침해 주장을 반복한 뒤 “남아공에서 G20 회의가 열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며 전면 보이콧을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대신 참석키로 했던 JD밴스 부통령이나 기타 당국자도 참석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차기 의장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중국에선 시진핑 국가주석 대신 2인자인 리창 총리가 파견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 발부 이후 국제회의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는 남아공에서 브릭스(BRICS)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에도 불참했으며, G20 정상회의에는 2021년부터 자리를 비웠다. 미국·중국·러시아 지도자가 모두 불참하는 건 2008년 미 워싱턴DC에서 첫 G20 정상회의가 열린 이후 처음이다.
서방 지도자들은 다수 참석한다. 유럽에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남아공을 방문할 예정이다.
아시아 주요 지도자로는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이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북미에선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유일하게 참석하며, 멕시코 역시 장관급을 파견키로 했다. 남미에선 같은 브릭스 회원국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참석 의사를 밝혔다.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며 불참 결정을 내렸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불참이 남아공에는 타격이지만, 다른 지도자들의 참석으로 G20 정상회의는 계속될(명맥을 이어갈) 것”이라고 짚었다.
마크 카니(왼쪽) 캐나다 총리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사진=AFP)
◇다자주의 외면한 미국…공백 메우려는 중국
미국이 전면 보이콧을 선언한 것은 이번 G20 정상회의 의제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번 회의 주요 의제는 지속가능한 성장, 기후변화 대응, 공정한 미래, 인공지능(AI) 사용 등으로 연대와 평등을 중시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기조와 대치되는 것들이어서 앞서 미국은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중국의 경우 남아공과 브릭스를 통해서도 연대하고 있는 만큼, 립서비스와 공식 지지를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을 대신해 글로벌 거버넌스를 주도하려는 움직임도 곳곳에서 엿보인다. 중국은 최근 브라질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도 기후변화 대응 논의를 이끌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스콧 케네디 선임고문은 블룸버그에 중국의 대응과 관련 “미국의 공백을 활용한 ‘실용적 리더십’ 전략”이라며 “글로벌 거버넌스 기구는 여전히 중국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핵심 플랫폼”이라고 짚었다.
자유민주주의 진영 소속 서방 국가들이 미국에 대응해 합종연횡을 가속화할 것인지도 주목된다. 트럼프 1기 때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불참하는 국제회의에선 그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거나, 나머지 국가들이 협력을 모색하는 모습이 자주 나타났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인도와 캐나다가 2년여간 이어진 갈등을 청산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국제관계 전문가인 안토니 판 니우베르크 남아공 남아프리카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G20 정상회의 불참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주도 패권 재확립 기조와 중국 주도 브릭스 동맹 사이에서 냉전 2.0이 출현하고 있으며, 다자주의의 상징인 G20은 그 틈새에 끼어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없는 곳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나오거나, G20 정상회의가 성공을 거둘 경우 어떤 반응을 내놓을 것인지도 주목된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불참 선언에 대해 “미국만 손해”라며 “빈 의자에 의장봉을 건네겠다”고 응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