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대출 늘어”…월가 베테랑들도 긴장하게 만든 ‘이것’

해외

이데일리,

2025년 11월 18일, 오후 06:55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은행이 아닌 비은행 금융중개회사(NBFI)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사모대출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곳곳에서 위험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자칫 시장에 스트레스가 발생할 경우 자금 회수가 한꺼번에 몰리며 유동성 부족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 (사진=AFP)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17일(현지시간) 보고서에서 사모대출 내 감시 장치 약화와 숨겨진 부채 증가가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업의 재무 조건을 느슨하게 한 ‘코버넌트 라이트’(대출조건이나 약관이 부실하거나 느슨한 것) 대출 확산으로 조기 경보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됐고, 이자를 부채로 떠넘기는 PIK(Payment-in-kind) 대출 증가도 부채 누적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이는 기업이 매 분기 현금으로 이자를 내지 않고, 이자를 다시 원금에 더해 ‘새로운 부채’로 누적시키는 구조다. 이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전체 빚이 급속히 증가해 결국 더 높은 비용으로 차환해야 하는 악순환이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디스는 사모대출 펀드가 보유 자산을 담보처럼 활용해 은행에서 단기 자금을 끌어오는 순자산가치(NAV) 기반 신용라인 사용 확대도 우려했다. 펀드가 은행 자금 의존도를 높일수록 사모대출과 은행이 서로 얽히고, 한쪽의 충격이 다른 쪽으로 빠르게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인프라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채를 별도 법인으로 옮겨 재무제표에 드러나지 않는 ‘숨은 레버리지’가 늘고 있다는 점도 위험 요인으로 제시됐다. 최근 파산한 자동차 부품업체 퍼스트브랜즈 그룹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은닉 부채가 뒤늦게 드러난 사례가 대표적이다.

월가 베테랑들의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채권왕’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 팟캐스트에서 사모대출 시장을 두고 “쓰레기 대출이 늘고 있다”, “2006년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재포장했던 것과 같은 덫을 가지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기반 채권은 2008년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던 만큼, 그와의 유사성은 시장에 적잖은 경각심을 주고 있다.

건들락은 사모대출로 자금을 조달해온 자동차 담보대출업체 트라이컬러와 퍼스트브랜즈 파산을 “초기 경고 신호”라고 지목하며, 사모대출 상품을 일반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구조도 문제로 꼽았다. 그는 “유동성이 거의 없는 자산임에도 언제든 인출 가능하다고 약속하는 것은 완벽한 모순”이라며 환매가 몰릴 경우 헐값 매각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 전반에 대해서도 “여러 자산이 극도로 고평가돼 있으며 지금의 주식시장은 내 커리어에서 본 것 중 가장 건전하지 못한 상태 중 하나”라며 급락 대비를 위해 “포트폴리오의 약 20%를 현금으로 두는 것이 적절하다”고 조언했다.

일부에서는 디폴트율이 낮고 차입기업 신용도도 개선되고 있다며 사모대출 시장이 견조하다는 시각도 있지만, 급팽창과 불투명성, 숨은 부채 확대, 은행과의 얽힘이 동시에 심화되며 위험이 쌓이는 속도가 시장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빠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용어설명: 사모대출

연기금·보험사·사모펀드 등 민간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기업에 직접 빌려주는 대체 금융 방식이다. 은행처럼 예금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시장 자금으로 운영되며, 규제가 상대적으로 적어 높은 이자율과 다양한 대출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 규제가 강화되자 빠르게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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