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손 잇따라 엔비디아 매각…'AI 거품론' 확산

해외

이데일리,

2025년 11월 18일, 오후 06:55

[이데일리 김겨레 김윤지 기자] 미국 증시의 ‘인공지능(AI) 거품론’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천문학적인 지출 대비 AI 수익성에 대한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인내심이 바닥나는 모양새다. 그 여파로 전 세계 증시가 조정국면을 맞고 있다.

엔비디아. (사진=AFP)
◇‘큰 손’ 매도 소식에 실적 발표 앞둔 엔비디아 하락

엔비디아는 17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전장보다 1.88% 하락한 186.6달러(약 27만37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페이팔과 팔란티어 창업자인 억만장자 투자자 피터 틸이 올해 3분기 지분 약 9400만달러(약 1377억원)어치의 엔비디아 주식 53만7742주 전량을 처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엔비디아 주가는 10월 말 이후 8% 가까이 하락했다. 이날 월가의 공포 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는 전장보다 12.86% 오른 22.38로, 6주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큰 손들이 잇따라 엔비디아 등 기술주를 매도하면서 ‘AI 붐’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확산하고 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는 지난달 58억3000만달러(약 8조5160억원) 규모의 엔비디아 지분을 정리했다. 영화 ‘빅쇼트’의 실존 인물이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한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엔비디아와 팔란티어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분기까지 ‘매그니피센트 7(주요 빅테크 기업 7곳)’의 지분을 늘렸던 월가의 초대형 헤지펀드들이 3분기 들어서는 그 비중을 축소했다.

투자자들은 오는 19일 장 마감 후 엔비디아의 3분기(8~10월) 실적 발표를 주목하고 있다. 시장은 엔비디아의 매출액이 548억달러(약 79조7600억원)로 전년동기대비 56%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AI 수요의 지표로 여겨지는 엔비디아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이 시장 예상을 밑돌 경우 AI 거품론에 불이 붙을 예정이다.

로스 메이필드 베어드 투자전략가는 “엔비디아가 수요 둔화가 없다는 점을 확인시킬 필요가 있다”며 “그러나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면 ‘컴퓨팅 수요가 강한 것은 알지만 기업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칩을 구매하는 데 따른 투자수익률(ROI)은 무엇이냐’는 의문은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요 전망이 조금이라도 보수적으로 제시되면 시장이 부정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아마존. (사진=AFP)
◇빚내서 AI 투자하는 빅테크…아마존, 22조원 규모 채권 발행

최근 AI산업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진 것은 빅테크 기업들이 관련 사업 확대를 위해 대규모 채권을 발행, 채무상환 리스크가 커질 수 있어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아마존은 회사채를 발행해 150억달러(약 21조9000억원)를 조달, 인수합병(M&A)와 설비투자, 자사주 매입 등에 투입할 예정이다. 특히 클라우드 서비스를 위한 AI 인프라 투자에 상당 금액을 투자할 계획이다.

아마존은 애초 120억달러(약 17조5000억원) 어치 채권을 발행할 예정이었지만, 투자자들의 수요가 몰려 발행 규모를 30억달러(약 4조4000억원) 증액했다. 아마존이 채권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한 것은 2022년 11월 이후 3년 만이다.

세계 최대 클라우드 서비스 AWS를 운영하는 아마존의 내년 설비투자는 1470억달러(약 215조원) 규모로, 2023년 투자 지출의 세 배에 이른다. 현재 아마존 데이터센터 용량은 2022년 대비 두 배로 늘었는데, 2027년까지 다시 현재의 두 배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아마존은 이달 초 오픈AI에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십만 개를 탑재한 컴퓨팅 인프라를 7년간 공급하는 380억달러(약 55조원)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아마존은 “모든 기업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업 운영 계획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이에 맞춰 신용계약 체결이나 채권 발행과 같은 자금 조달 결정을 내린다”며 “이번 발행으로 조달된 자금은 사업 투자 지원, 향후 설비투자 재원 확보, 도래하는 채무 상환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라클도 지난 9월 180억달러(약 26조원)를 채권 시장에서 조달했고, 메타도 지난달 300억달러(약 44조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이달 초 250억달러(약 36조원) 규모의 회사채를 미국과 유럽 시장에 내놨다.

빅테크 기업이 대규모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대규모 AI 투자 지출로 현금 여력이 줄어든 것과 무관치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전체 자산에서 현금 및 단기 투자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43%에서 올 3분기 16%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구글은 43%에서 18%로, 아마존은 26%에서 13%로 낮아졌다. 알파벳과 아마존, MS 모두 올해 잉여현금흐름이 지난해보다 감소할 전망이다.

빅테크 기업들은 기존에도 대규모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지만, ‘AI 붐’은 그 규모를 전례 없이 키웠다는 평가다. 맥킨지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세계 데이터센터 및 AI 인프라 설비 투자액은 7조달러(약 1경원)에 달할 전망이다. 향후 AI에 대한 수요가 예상만큼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빅테크 기업은 대규모 유휴 설비 비용을 떠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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