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2023년 10월7일, 그날을 잊지 못한다. 전투력이 약하다고 판단했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군대 수천명의 습격으로, 2000명 가까운 이스라엘인들이 살해되거나 납치된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한국기자들은 이스라엘 정부 초청으로 하마스와의 교전이 벌어졌던 가자지구 인근 남부 키부츠 니르 오르지역과 인질광장이 있는 텔아비브 등을 다녀왔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가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이행중이지만, 전쟁의 상흔은 여전히 남아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인질로 잡혀갔다 구출된 루이스 할씨가 한국 기자들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기자단은 지난 2일 하마스에 인질로 잡혀 갔다가 약 3개월 만에 이스라엘군(IDF)의 구출 작전으로 풀려난 루이스 할(60대) 씨를 텔아비브 인질광장에서 만났다. 그날의 고통을 떠올리는 그의 눈동자와 입술은 떨렸고, 손끝은 흔들렸다.
그날 그는(2년 전 10월7일) 이스라엘 남부에 있는 자신의 동네에서 친구들과 음악을 듣고 있었다. “평범한 아침이었어요. 그런데 몇 분 만에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게 뭐지?’ 싶었는데 폭발음이 이어졌어요.”
거리 위 사람들은 순식간에 쓰러졌고, 아이들이 울부짖으며 어른들의 비명이 뒤엉켰다. “머리가 잘린 시신, 총에 맞은 여자들, 피로 물든 거리. 다시는 그런 장면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할 씨는 트럭 뒤에 실려 가자지구 안쪽으로 끌려갔다. 눈은 가려져 있었고,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숨소리라도 들리면 총을 들이대던” 공간에서 며칠씩 물 한 모금 없이 버텼다. “그곳은 지옥이었습니다. 햇빛도, 바람도 없었어요. 살아 있다는 감각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3개월을 버틴 어느날 새벽녘, 총성이 다시 울리고 문이 부서진 뒤에야 그는 자신이 ‘구출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구출된 이후에도 마음은 여전히 가자 지하감옥에 남아 있다”고 그는 말했다.
10월7일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집단 기억의 바닥을 바꿔놓은 날짜다.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새벽 시간대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기습 공격하면서 가자 인근 키부츠(집단농장) 마을과 노바(Nova) 음악축제 현장이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거의 2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남부 현장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말은 한 방향을 가리킨다. “그날 이후, 우리 안의 시간은 아직도 멈춰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노바축제 생존자인 마잘 타자조씨가 2023년 10월7일 하마스에게 살해당한 자신의 친구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노바 축제 생존자 마잘 타자조씨의 이야기는 그날 새벽의 공기를 생생하게 되살린다. 친구 다니엘(25), 요하이(23)와 함께 노바 페스티벌에 갔던 세 사람 가운데 살아서 돌아온 건 마잘씨 혼자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지금 추모 나무와 기념물이 늘어선 공간이다. “여기가 그날 사람들이 춤추던 메인 스테이지 앞이었어요. DJ가 음악을 틀고, 사람들은 밤새 춤을 췄죠.” 주변에는 임시 텐트와 바, 휴게 공간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참가자는 약 3500명. “이스라엘에서 천 명만 넘어도 큰 파티인데, 3500명이 모였다고 해서 친구들이랑 많이 들떠 있었죠.”
해가 떠오르기 직전인 새벽 6시20분 전후, 마잘은 선글라스와 모자를 가지러 텐트 쪽으로 잠시 걸어가던 중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DJ가 갑자기 음악을 멈췄는데, 여러 방향에서 로켓 연기 기둥이 치솟고 있었죠.” 남부 출신인 그는 “또 로켓인가 보다, 사이렌 울리면 대피했다가 다시 파티가 시작되겠지”라고 생각했다. 로켓 공격은 어린 시절부터 일상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로켓이 너무 많았어요. 방향도 여러 곳에서 동시에 날아왔어요.” 보안요원과 진행요원들은 확성기로 “파티는 끝났다. 짐은 두고 당장 차로 가라. 지금 즉시 여기서 나가라”고 외쳤다.
마잘과 친구들도 232번 도로 방향 출구로 차를 몰고 나갔다. 하지만 도로엔 이미 수백미터 이상 줄 서 있는 차량들로 막혀 있었다. 그 사이 키부츠 레임 방향에서 총성과 폭발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차를 버리고 뛰어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도로 일대는 전면전으로 변했고, 마잘은 나무 줄 사이 땅이 움푹 파인 곳을 찾아 흙과 풀, 나뭇잎을 손으로 긁어 모아 온몸을 덮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하면서, 완전히 죽은 시체처럼 보이려고 했어요.” 하지만 잠시 뒤 누군가가 뒤에서 다가와 총 개머리판으로 머리 뒤를 내리쳤고, 그는 그대로 기절했다. 몇시간 뒤 깨어나 주변을 확인하자 두 친구는 이미 숨진 채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잘씨는 눈물을 머금은 채 이렇게 말했다. “왜 나만 살아 있고, 이 친구들은 여기 누워 있어야 하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어요.”
남부 키부츠 ‘니르 오즈’의 리타 립시츠씨가 하마스에 의해 사망한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당시 상황을 전하고 있다.
남부 키부츠(농촌 공동체) ‘니르 오즈’에서 만난 리타 립시츠 씨의 증언은 또 다른 10월7일의 장면을 들려준다. 니르 오즈는 가자지구와 직선 거리로 2km 떨어진 지역. 220채에 주민들이 모여 사는 전형적 키부츠로, 작은 와이너리(포도농장)들이 즐비해 있다. 리타씨는 “하마스가 들어오지 않은 집은 6채뿐”이라며 “테러리스트 500명이 이 작은 키부츠를 덮쳤다”고 담담하게 숫자를 읊었다.
그날 하마스 대원들은 키부츠의 가스 배관을 잘라 그 가스로 집마다 불을 질렀다고 한다. 사람들은 로켓을 피하기 위해 있던 방공호(세이프 룸)로 몸을 피했지만, 결국 가스와 불에 질식해서 죽거나, 밖으로 나왔다가 총에 맞는 둘 중 하나였다.
리타의 시아버지인 오데드 립시츠씨는 평생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공존을 꿈꾸던 ‘평화운동가’였다. 가자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암 환자 아이들을 직접 차에 태워 예루살렘 병원까지 데려다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 방공호 문을 붙잡고 있던 오데드씨와 아내 요헤베드씨는 인질로 끌려갔다. 요헤베드는 17일 만에 석방됐지만 오데드씨는 500일 넘게 가자에 잡혀 있다가 관에 실려 돌아왔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집들이 모두 불에 타 폐허가 된 니르 오즈 마을은 집집마다 꽂혀있는 깃발만이 주인을 기다리는 듯 했다. 노란색 깃발은 ‘이 집에선 누군가 납치됐다’, 검은색은 ‘이 집 사람은 키부츠 안에서 살해됐다’, 파란색은 ‘인질이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를 의미한다고 리타씨는 설명했다. 일부 노란·검은 깃발은 최근 들어서야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잡혀갔던 사람들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고통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모두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어요. 이 키부츠 전체가 매일 아침 슬픔과 트라우마 속에서 눈을 뜹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마스보다 강하다고 믿어요. 그래서 저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살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