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효과는 몇 시간뿐”…기술주가 하락 주도
전날 엔비디아는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실적을 발표하며 개장 직후 5% 이상 급등했지만, 정규장에서는 3.2% 하락으로 돌아섰다.
엔비디아 매출채권 증가에 대한 우려도 시장 불안을 더했다. 보케 캐피털 파트너스의 킴벌리 포리스트 CIO는 “제품이 잘 팔린다고 한다면 왜 대금 회수가 더딘지 질문이 나오고 있다”며 수익성 구조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기술주는 이날 S&P500 내 가장 크게 밀린 분야가 됐다. 팔란티어(-5.8%), 오라클(-6.6%), 로빈후드(-10.1%), 웨스턴디지털(-8.9%) 등 올해 급등했던 고모멘텀 종목들이 동반 하락했고, 아마존(-2.5%)·알파벳(-1.03%) 등 빅테크도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부담이 재부각되며 약세를 보였다. AMD(-7.8%)·마벨(-5.7%) 등이 포함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4.8% 떨어졌다.
이번 급락의 핵심 배경으로는 AI 투자 대비 실제 수익성에 대한 근본적 의구심이 지목된다. 엔비디아의 폭발적 실적에도 불구하고 “AI가 향후 몇 년간 지금과 같은 속도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가”라는 회의론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밀러 타박의 매트 말리 수석 시장 전략가는 “핵심 질문은 ‘AI가 시장이 기대하는 만큼의 수익을 낼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일부 투자자들이 장기 수익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웰스파고투자연구소의 사미르 사마나 글로벌 주식·실물자산 총괄은 “엔비디아 실적은 긍정적이었지만,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다는 의구심을 해소하기엔 충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픽테자산운용의 아룬 사이 전략가는 “엔비디아 실적이 단기적 불안을 덜어주긴 했지만, 고평가 리스크는 다시 살아났다”며 “빅테크의 공격적인 AI 인프라 지출이 언제 실질적 수익으로 이어질지 시장이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월마트(6.5%), 큐리그닥터페퍼(+1.2%), 코스트코(+0.3%) 등 방어적 소비재가 강세였다. 다만 소비 관련 종목인 배스앤드바디웍스는 실적 전망 하향 조정으로 24.81% 폭락해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비트코인 급락·CTA 자동매매…변동성 증폭
비트코인은 이날 8만7000달러 아래로 떨어지며 8만6337달러선까지 밀렸다. 지난달 6일 기록한 12만6000달러 고점 대비 30% 이상 하락한 수준이다. 이는 위험자산 전반의 투자 심리를 더욱 위축시켰다는 평가다. 비트코인을 대량 보유하며 주식·채권을 발행해 추가 매입을 이어가는 이른바 ‘크립토 트레저리’ 기업들도 동반 약세였다. 비트코인 보유기업 스트래티지는 약 5% 떨어졌고, 이더리움 보유 비즈니스 모델을 쓰는 비트마인(BitMine)은 10.8% 급락했다.
여기에 금요일 예정된 옵션 만기(OPX)를 앞둔 포지션 조정, 하이퍼스케일러들의 공격적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우려 등이 겹치며 기술주 중심으로 매도가 쏟아졌다.
시장에서는 기관들의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금 이른바 ‘패스트 머니’(fast money)’가 급하게 빠져나온 것도 낙폭을 키운 원인으로 보고 있다. 최근 강하게 오른 종목에 몰려 있던 모멘텀 거래가 되돌려지면서, CTA(상품투자자문)나 퀀트 알고리즘 같은 자동매매 프로그램이 일제히 매도 신호를 내보낸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가격이 떨어지거나 변동성이 커지면 기계적으로 비중을 줄이기 때문에 하락이 연쇄적으로 확대되는 구조다.
배어드의 로스 메이필드 투자전략가는 “오늘의 급락은 단기적으로 차트가 무너지고, 가격이 아래로 흐르는 힘이 커진 데다, 변동성에 대비해 자동으로 팔아버리는 전략이 겹친 결과”라며 “투자심리가 꺾이면 다시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서스퀘한나 인터내셔널 그룹의 크리스 머피는 “엔비디아 실적 발표가 끝난 지금, 연준의 12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투자자들이 연말 랠리의 동력을 찾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CTA 포지션은 여전히 취약하며, 추가 하락 시 매도가 더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용지표 혼조…더 어려워진 연준 금리인하 판단
셧다운 여파로 지연됐던 9월 고용보고서는 비농업 일자리가 11만9000개 증가하며 예상치를 웃돌았지만, 실업률이 4.4%로 올라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이 지표가 사실상 두 달 전의 상황을 반영한 ‘구식 데이터’라는 점에서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플랜트모란의 짐 베어드 투자책임자는 “이 데이터는 실질적으로 두 달이나 지난 것”이라며 “43일간의 정부 셧다운 기간 동안 노동시장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보고서에는 7월·8월 고용이 하향 수정되는 등 부정적인 신호도 포함돼 있으며, 9월 신규 고용의 대부분이 단 두 개 산업에 집중된 점도 경기의 폭넓은 회복을 보여주는 지표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연준이 12월 회의에서 이번 고용지표에 얼마나 비중을 둘지도 불확실하다. 베어드는 “이번 지표가 정책 결정을 바꿀 만큼의 ‘게임 체인저’는 아니다”라며 “노동시장 또는 경기의 추가 약화가 보다 명확해지지 않는 한 연준은 금리를 동결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즉, 고용지표는 숫자만 보면 나쁘지 않지만, 구성·시차·질적 측면에서 취약한 요소가 많아 연준의 금리 결정에 명확한 방향성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금리선물 시장은 12월 금리인하 가능성을 39.5% 정도로 반영하고 있다.
◇위험자산 회피하자…2년물 금리 6.3bp 뚝
위험회피 신호가 강해지면서 국채가격은 급등했다. 글로벌국채 벤치마크인 10년물 국채금리는 4.5bp(1bp=0.01%포인트) 가량 빠지며 4.086%를 기록 중이다. 연준 정책에 민감하게 연동하는 2년물 국채금리는 6.3bp 떨어진 3.535%에서 움직이고 있다.
달러는 보합세를 기록 중이다.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0.23에서 움직이고 있다.
국제유가는 이틀째 빠졌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장 대비 0.30달러(0.50%) 내린 배럴당 59.1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우크라이나는 미국 측으로부터 러시아와의 평화 구상안 초안을 전달받았으며 그 내용에 대해 미국과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고, 이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감소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