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대사관이 밀접한 량마허는 주변을 지키는 공안들이 많은 편이지만 이날 주중 일본대사관은 공안 차량만 3대가 위치하는 등 평소보다 삼엄한 분위기였다. 최근 중국 내 반일 감정이 높아지면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돌발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로 보였다.
지난 21일 중국 베이징 일본 음식점 밀집 지역인 하오윈지에가 한산한 모습이다. (사진=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식당에 두 테이블만 딸랑, 불금에 다 어디갔나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대만 유사시 개입’을 시사한 후 중·일 관계는 극도로 악화하고 있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일본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일본 영화와 공연을 사실상 금지하는 등 중국 내 ‘한일령’(일본 문화 제한령)까지 번지고 있다.
주중 일본대사관은 최근 자국민들에게 공지를 통해 외출 시 수상한 사람 접근이나 주위 상황에 주의하고 여러명이 함께 움직여 안전 확보에 힘쓰며, 많은 사람이 모이는 광장 등이나 일본인이 주로 이용하는 장소는 피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주중 일본대사관 맞은편 하오윈지에(호원가)에는 일본 음식점들이 밀집해 일본인은 물론 일본 음식을 즐기는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하지만 이날 방문한 하오윈지에 일대는 금요일 저녁임에도 한산한 모습이었다.
이곳에 위치한 한 음식점 내부는 30여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저녁 시간인데도 4명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 중 두 명은 일본인이었다. 주변에 위치한 다른 일본 음식점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약 한 달 전 금요일 이곳을 찾았을 때 퇴근 후 맥주를 마시려는 직장인들과 대학생들이 붐비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이곳 음식점의 매니저는 “첫째로는 베이징에 사는 일본인 자체가 감소한 영향도 있지만 최근 중국과 일본 관계가 악화하면서 손님이 더 많이 줄었다”면서 “그래도 토요일에는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오길 바라는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중국은 집단 자위권, 즉 군사력을 발동해 대만 사태에 개입할 수 있다는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을 엄중하게 여기고 있다. 대만 문제는 중국 정부의 ‘하나의 중국’ 원칙의 중요 사항이자 외교 관계에서 금기 사항인 일명 레드라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평소 강경파 보수이자 친대만 성향으로 알려진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달 취임 직후 대만과 관련한 문제를 건드리자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이다.
중국 외교 수장인 왕이 외교부장(장관)은 지난 22일 최근 타지기스탄 외교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은 일본의 우익 세력이 역사를 뒤집는 것과 외부 세력이 대만을 개입시키는 것,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면서 강하게 일본을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21일 중국 베이징 일본 음식점 밀집 지역인 하오윈지에가 한산한 모습이다. (사진=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온라인도 비난, 다만 日 문화 향유 분위기도 여전
온라인에서도 일본을 비판하는 여론이 많다. 중국 최대 인터넷 포털 바이두와 ‘중국판 엑스(X·옛 트위터)’ 웨이보에서는 대만 사태를 언급한 일본을 비판하는 키워드가 상위 검색어를 차지하고 있다.
한 웨이보 사용자는 “아직도 도둑과 같은 일본의 마음은 변하지 않고,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뉘우치지 않고 헛되이 전쟁과 외세의 침략을 다시 선동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다만 아직까진 중국의 반일 여론이 전방위로 확산하지 않은 조짐도 보인다. 정부 주도로 일본 공세를 강화하고 있지만 일본 문화를 즐기는 젊은층 사이에서는 이와는 별개로 활동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것이다.
이날 대부분 음식점이 한산했던 하오윈지에에서 맛집으로 알려진 한 가게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많은 고객이 찾고 있었다. 물론 고객 대다수는 일본인이었으나 이곳 음식을 맛보기 위해 방문한 중국인들도 여럿 보였다.
고객 중 젊은 중국인 여성들은 “일본어를 연습했다”면서 일본어를 사용해 일본인 사장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이 사장에게 최근 중·일 관계를 묻자 “그것관 무관하게 중국 ‘메이난메이뉘’(미남미녀, 젊은 남성과 젊은 여성을 부르는 말)들이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중국 베이징의 한 영화관 내 ‘귀멸의 칼날’ 홍보 게시물이 전시돼있다. (사진=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중국 내 ‘짱구는 못말려’ 같은 일본 영화 상영이 중단됐으나 여전히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귀칼)은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중국 매체들은 14일 개봉한 귀칼이 사흘 만에 흥행 수익 3억위안(약 622억원)을 돌파했으나 5일차엔 하루 2000만위안(약 41억원)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중국 영화 예매 플랫폼 마오옌에 따르면 개봉 10일차인 현재 귀칼의 흥행 수익은 5억5000만위안(약 1140억원)을 넘었다. 노재팬 논란이 불거진 후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관객을 모으는 것이다.
최근 극장가에서 만난 한 30대 중국인 장모씨는 “일본과 관계가 악화했다곤 하지만 20~30대 중국인 중에는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비중이 꽤 크다”면서 “(중·일 갈등은) 아직 정치인들과 어른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