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사진=AFP)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을 통해 “엔비디아가 H200를 중국과 기타 국가의 승인된 고객에게 파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통보했다. 시 주석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며 “판매 대금의 25%는 미국(정부)에 지급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가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국가안보, AI 분야에서 미국이 선두 자리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3년 출시된 엔비디아 H200은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다. 최첨단 모델인 블랙웰보다는 성능이 떨어지지만, 현재 대중 판매가 허용된 H20과 비교하면 6배나 성능이 뛰어나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단’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미국은 그동안 군사목적 전용 등 국가안보 위협을 내세우며 중국의 ‘AI 굴기’를 원천 봉쇄한다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 이러한 전략은 조 바이든 전 정부 시절 강력한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장벽을 구축하면서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규제 장벽을 스스로 허문 꼴이 됐다. 2022년 시작한 대중 수출 규제 정책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앞서 대중 수출 허용한 다른 AI 칩과 마찬가지로 H200에 대해서도 ‘판매 대금의 일부를 미 정부가 가져가는’ 조건이 붙어 더욱 주목된다. 특히 H200의 경우 그 비율을 25%로 못박은 점이 눈에 띈다. H20의 경우 판매 대금의 15%를 미 정부에 납부키로 했다.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챙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동시에, 미 정부의 경제적 실리까지 챙기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른바 ‘트럼프식 거래주의’로의 대전환으로, 밑바탕에는 중국이 미 기술 생태계에 계속 의존하도록 유도하고 동시에 수익까지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최종 결정 과정에서 황 CEO의 설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황 CEO는 첨단 AI 칩을 중국에 판매하지 않을 경우 중국 시장을 잃을 뿐 아니라 중국의 AI 칩 독립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실제로 중국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올해 급성장세를 지속하면서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가능성이 대폭 부각됐다.
이에 서둘러 이익이라도 챙겨야 한다는 인식이 트럼프 대통령과 의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H200은 H20에 비해 훨씬 고사양인 만큼 중국이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를 상대로 AI 대중 수출 규제 완화 로비를 벌여온 황 CEO이 최종 승리자”라고 평했다.
“중국의 AI 발전을 위한 판을 깔아줬다” “미국 행정부의 기존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등의 비판 목소리도 적지 않다. 중국이 AI 경쟁에서 미국을 따라잡는 것을 극도로 우려하는 대중 강경파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싱크탱크 IFP의 알렉스 스탭 공동창업자는 “이번 결정은 엄청난 자살골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달 4일 미 상원에서는 초당파 의원들이 엔비디아 H200이나 블랙웰처럼 최첨단 칩을 향후 30개월 동안 중국에 판매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안전하고 실현 가능한 칩 수출법, SAFE)을 발의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방중을 앞두고 한 발 물러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언제든 수출 통제를 재개할 수 있는 만큼,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처럼 상호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통화 후 내년 4월 방중을 예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