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한 신규 원전건설도 재공론화…원전정책 후퇴에 AI산업 차질

해외

이데일리,

2025년 12월 11일, 오후 09:41

[이데일리 김윤지 김형욱 기자] 주요국이 인공지능(AI)발 전력수요 폭증에 대비해 원전 확대 기조로 돌아선 것과 대조적으로 정부는 올 초 확정한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다시 공론화하기로 하는 등 원전에 대한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원전 정책 후퇴가 자칫 AI 산업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전 세계적으로 AI의 경쟁핵심 변수로 떠오른 게 전력이다. AI 성능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은 2030년까지 현재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약 945테라와트시(TWh)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일본의 전체 전력 소비량(2021년 기준 924TWh)을 웃도는 수준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탈원전 정책을 추진 중인 대만 정부를 향해 AI 산업을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원전 건설을 중단하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할 정도다. 이처럼 전 세계가 치열한 AI 경쟁에서 전력 확보를 위해 원전 확대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신규 원전 건설을 경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원전, 산업기술적 자원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11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내년 초 시행을 목표로 올 2월 확정된 신규 원전 2기 건설계획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와 대국민 토론회를 준비에 착수했다. 앞선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이미 공론화를 거쳤고 이 과정에서 3기 신규건설 계획을 2기로 줄이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다시 공론화를 거쳐 추진 여부를 결정키로 한 것이다.

정부의 현 에너지 정책은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을 우선하느라 원전은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놓여 있다. AI발 전력수요 증가 전망 속 앞선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선 한 발 후퇴했지만 대형 사고에 대한 우려와 주민 수용성 부담이 큰 만큼 현 수준의 원전 가동 이상의 역할은 맡기지 않겠다는 보수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당국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원전 운영(26기)과 발전비중(31.7%·이하 2024년 기준)은 세계 5위권이지만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보급량(36기가와트)과 비중(10%)은 주요국 대비 크게 못 미치는 만큼 재생에너지 확대에 힘을 싣기로 한 것이다”며 “원전 축소 기조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의 유보적 기조 속 원전산업계는 위축돼 있다. 올 초까지만 해도 26조원 규모 체코 원전 2기 사업 수주로 16년 만의 원전 수출을 성사시키고 AI발 글로벌 원전 수출 호기를 맞아 기대감을 키웠으나 지난 10월 기후부 출범과 함께 원전 정책이 국내운영(기후부)과 수출(산업통상부)로 나뉘는 등 정책 불확실성이 커졌고 국내 신규사업 추진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전문가들은 원전이 AI 전환과 그린 전환(BI)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에너지원일 뿐 아니라 산업적 관점에서도 더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방국가 중 원전 주기기 제작부터 건설까지 한번에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며 “필요하다면 신규 원전건설 재공론화는 잘 추진해야겠지만 우리 원전이 산업기술적 자원이라는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4년 기준 약 100기가와트(GW)인 원전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400GW로 확대한다면서 4건의 원전 관련 행정명령에 올해 5월 서명했다. 이는 미국 내 원자력 기술의 배치, 수출, 규제 전반에 걸친 체계 정비를 통해 미국이 세계 원자력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강한 정책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벨기에가 올해 22년 만에 ‘탈원전 공약’을 폐기했으며 이탈리아, 스위스, 스페인 등도 신규 원전 건설 허용,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 등 원전 확대로 돌아섰다. 전체 전력의 90% 이상을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덴마크도 탈원전 선언 40년 만에 SMR 등 차세대 원자력 기술 도입 검토에 착수했다.

전면 탈원전 계획을 세웠던 대만도 정책 변화가 감지된다. AI 열풍 아래 세계적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 등 대만 기업들이 수혜를 누리고 있는 만큼 반도체 생산 관련 전력 수요 확보 차원에서다. 지난달 대만 정부는 폐쇄된 원전 중 제2·3 원전 두 곳의 경우 재가동 가능성이 있다고 시사했다. ‘AI 신흥국’인 중국, 인도 등도 신규 원전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 세계 15개 국가에서 62기의 원자로를 건설 중으로 총 설비용량은 약 65GW(기가 와트) 수준이다. 중국이 가장 많은 28기의 원자로를 건설 중이며 인도(6기), 러시아(5기) 수준이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가스발전 변수많고 재생에너지는 부족”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 서비스는 전력 사용을 폭증시키고 있다. AI 플랫폼 허깅페이스에 따르면 오픈소스 기준 10초 분량의 AI 영상을 생성하는 데 약 90Wh(와트시)의 전력을 소모한다. 이미지 생성 대비 30배, 텍스트 생성 대비 2000배나 많은 전력을 사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인 대안은 그리 많지 않다. 석탄 등 화석연료는 탄소를 배출해 기후 위기를 심화한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자연환경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어렵다. 원전은 탄소배출이 없으면서도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하다.

량치위안 대만 중앙대 강좌교수(석좌교수)는 “가스발전은 변수가 많고 재생에너지 공급은 매우 부족하다”며 “AI 등 산업용 전력의 전력난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신속히 원전을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적인 원전 확대 움직임에 따라 세계원자력협회(WNA)는 2050년 글로벌 원전 용량이 1428GWe(기가 와트시)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현재 전 세계 가동 원전 용량의 약 4배 가까운 것으로, 2050년 목표로 각국 정부가 발표한 원전 용량 목표와 기존 원전의 지속적인 운영과 수명 연장, 건설 중인 원전 프로젝트 등을 토대로 한다. 31개국이 합의한 2050년 달성 목표인 1200GWe도 웃돈다. 다만 국가 목표를 달성하려면 원전 건설 속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WNA는 제언했다. 신규 원전 건설에 속도를 내 전력망 연결 속도를 2030년까지 현재 대비 4배 이상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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