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닐 '대량살상무기' 지정…트럼프 "지상전 곧 시작"

해외

이데일리,

2025년 12월 16일, 오전 12:59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합성마약 펜타닐을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WMD)로 규정했다. 마약류를 화학무기와 똑같이 취급하겠다는 것이어서 향후 대내 국정 운영이나 대외 외교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트럼프, WMD 지정 행정명령 서명…“펜타닐, 美안보 위협”

15일(현지시간) CNN방송, 폭스뉴스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펜타닐을 대량살상무기로 공식 지정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마약 유입은 미합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이라고 선언하며 “오늘 나는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치명적인 펜타닐 위협으로부터 미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또 다른 조치를 취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나의 최우선 의무는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해상으로 미국에 들어오는 마약의 양이 94% 줄었다”고 부각했다.

올해 1월 취임 직후부터 벌여온 ‘마약과의 전쟁’ 성과를 과시하는 한편, 최근 마약 운반 의혹 선박을 잇따라 공습한 것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해상에선 베네수엘라 마약 카르텔들이 카리브해를 통해 펜타닐을 미국으로 밀반입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멕시코·캐나다에 부과한 펜타닐 관세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파악된다.

백악관이 홈페이지에 게재한 행정명령에 따르면 불법 펜타닐에 대해 “마약이라기보다는 화학무기에 더 가깝다”며 “거의 감지되지 않을 정도로 미량인 2밀리그램(㎎), 즉 일반 소금 10~15알 정도의 양조차도 치명적인 수준의 치사량”이라고 적시했다.

행정명령은 또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초국가적 범죄 조직들이 펜타닐 판매 수익을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활동 자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두 주요 카르텔이 영역 다툼을 벌이면서 (단순한) 마약 위기를 한참 넘어선 광범위한 폭력을 야기하고 있다”며 펜타닐을 대량살상무기로 지정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에선 매년 수만명이 펜타닐 등 합성 마약류 과다복용으로 사망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합법 의료용 처방은 제한적으로만 이뤄지며, 미국으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펜타닐은 중국산 원료로 멕시코에서 밀제작된 것이다. 간이 실험실에서도 손쉽게 제조가 가능해 뿌리 뽑기가 쉽지 않다고 외신들은 짚었다.

이에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멕시코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으며, 지난 5월엔 300만정의 펜타닐을 압수하는 성과도 거뒀다.

국경 정책을 총괄하는 ‘국경 차르’ 톰 호먼은 “국경이 안전해지면서 매일 목숨이 구해지고 있다. 인신매매가 급감했고, 펜타닐 (유입)도 급감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경한 이민 정책이 미국 내 펜타닐 소비 감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사진=AFP)
◇베네수엘라 정조준…“군사적 대응 정당성 확보” 우려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펜타닐 유통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법적 수단과 군사적 옵션을 동원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은 “마약류를 대량살상무기로 지정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펜타닐을 단순한 공중보건 위기가 아닌 화학무기와 동급의 국가안보 위협으로 다루겠다는 의지를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마약 카르텔을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고 있으며, 이는 법적·군사적 관점에서 매우 중대한 조치”라며 “우리는 ‘잡았다가 풀어주는’ 정책을 끝냈다”고 밝혔다.

외신 및 전문가들은 중국과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 펜타닐 공급국을 향한 미국의 대외 정책과 서반구 군사력 운용 전반에 파장이 일 것으로 예측했다. 과거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이라크가 여전히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워 이라크 침공과 사담 후세인 정권 축출의 법적 명분을 쌓은 바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중국에 대해선 “우리와 매우 긴밀히 협력하며 유통되는 펜타닐 양을 줄이고 있다”고 옹호한 만큼, 이번 조치는 사실상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겨냥한 것으로 파악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박 공습에 이어 지난달 베네수엘라에서 지상작전이 곧 시작될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번 조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환영하며 지지 입장을 밝혔으나, 대외 군사 개입 명분으로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통상 압박 카드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조나단 콜킨스 카네기멜론대 교수는 “단순히 많은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모든 것을 WMD로 부른다면 담배 역시 WMD가 돼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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