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와인 시장, 3년 연속 뒷걸음질… 트럼프 관세 직격

해외

이데일리,

2025년 12월 26일, 오후 02:26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고급 와인 시장이 올해로 3년 연속 하락세를 지속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 이후 미국 내 수요가 줄어든 데다, 투자자들 역시 주식과 금(金) 등 다른 자산으로 옮겨간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사진=AFP)
2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상위 100개 고급 와인의 가격변동을 추적하는 벤치마크 영국 와인거래소 리브엑스(Liv-ex)의 ‘파인와인 100 지수’는 올해 11월 말까지 전년 동기대비 2.8% 하락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보르도는 6.6%, 부르고뉴는 4.4%, 빈티지 샴페인은 4.3% 떨어졌다.

리브엑스의 저스틴 깁스 부의장은 “이번 하락장은 유난히 광범위하다. 그동안 일부 품목은 약세장 속에서도 선전했지만, 이번엔 모든 부문이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지수는 2020년 말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여유 자금과 저금리 덕분에 투자 수요가 몰렸던 상승세를 모두 반납한 것이다. 같은 기간 미국 기술주와 금값이 급등하며 투자자금이 이탈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결정적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유럽산 수입품에 15% 관세를 부과한 것이 직격탄이 됐다. 관세 부과 이후 올해 미국 내 고급 와인 구매액은 약 44% 감소했다.

전체 와인 수요를 가늠하는 보르도의 ‘앙 프리메르’(en primeur·병입 전 선판매) 시장도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생산자들이 새 와인 가격을 과도하게 책정한 탓에 잔여 재고가 쌓여 2차 시장 가격이 하락했다.

중고 시장에서 와인 가격이 하락하고 도매상·판매상이 여전히 대규모 재고를 보유하며 판매를 미루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소비자들이 구매를 꺼리기 시작했다.

와인 판매업체 레이앤휠러와 와인 창고 코테리 볼츠를 소유한 코터리홀딩스의 마이클 손더스 최고경영자(CEO)는 “보르도가 2025년산 빈티지의 낙관적 전망에 기대어 가격을 올린다면 전통 와인 구매층을 더 멀어지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품질도 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출시된 2021년산 보르도 빈티지 전반이 ‘무난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해에 생산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부진한 판매를 보였다. 샤토 무통로칠드 2021년산은 12병 한 케이스 기준 3312파운드로 올해 5.2% 하락했고, 샤토 오브리옹은 11.4% 떨어져 2700파운드에 거래됐다. 샤토 오존 2021년산은 34% 급락해 3106파운드로 내려앉았다.

다만 지난달 말까지 석 달 동안에는 고급 와인 가격이 소폭 반등하는 등 회복 조짐도 감지된다. 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에서 수요가 되살아난 덕분이다.

홍콩의 알타야와인스 창립자 파울로 퐁은 “홍콩 증시 회복으로 금융·법률업 종사자들의 여윳돈이 늘며 와인 구매가 다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비눔와인스 리 크림블 대표도 “중국 상하이 와인 시장이 빠르게 성숙해지며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와인 투자사 크루 와인의 그레고리 스와트버그 창립자는 “지난 3년간 시장이 매우 어려웠지만, 동시에 훌륭한 와인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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