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벽지서 '자본의 수도'로…아부다비 60년 대변신

해외

이데일리,

2025년 12월 29일, 오후 05:45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60년 전 아부다비는 그저 사막의 작은 점이었다. 인구 3만명. 포장도로는 거의 없었고, 건물 몇 채가 모래 위에 흩어져 있었다.

오늘날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이자 최대 토후국인 이곳은 다르다. 인구 400만명의 도시로 성장했고, 1조7000억달러(약 2435조원)라는 천문학적 자산을 보유한 국부펀드들이 글로벌 투자 시장을 주무른다. 업계에선 아부다비를 ‘자본의 수도(Capital of capital)’라 부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29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아부다비의 반세기 변신 스토리를 공개했다.

사진=나노바나나
◇1976년 ADIA 설립에도 ‘낮은 자세’ 유지

이야기는 한 노회한 통치자에서 시작한다. 자이드 빈 술탄 알나흐얀 셰이크. 그는 1966년부터 거의 40년간 아부다비를 다스렸다.

자이드는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두 갈래로 나눴다. 일부는 도로, 건물 등 당장 필요한 인프라에 썼다. 나머지는 조용히 저축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였다.

1976년 아부다비투자청(ADIA)이 만들어졌다. 1984년엔 국제석유투자회사(IPIC)가, 2002년엔 아부다비 국부펀드 무바달라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 아부다비는 철저히 ‘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업계 추적기관 글로벌 SWF의 디에고 로페즈 전무는 “아부다비는 의도적으로 낮은 프로필을 유지했다”며 “하지만 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자본의 수도’였다”고 말했다.

◇2004년 전환점…페라리·칼라일 잇단 투자

2004년 자이드가 세상을 떠났다. 후계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아들 칼리파와 모하메드는 “이제 세상에 나갈 때”라고 판단했다.

변화는 극적이었다. 2005년 무바달라는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 지분을 샀다. 2007년엔 미국 사모펀드 거물 칼라일그룹과 반도체 기업 AMD에 투자했다.

조용한 저축자가 공격적 투자자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금융위기 틈타 자산 매입…그러나 1MDB 스캔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서방 금융회사들은 비틀거렸고, 자산 가격은 폭락했다.

아부다비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유가는 배럴당 140달러까지 치솟았고, 아부다비 금고는 넘쳐났다. 위기는 곧 기회였다. 아부다비 펀드들은 헐값이 된 서방 자산을 마구 사들였다. 이 시기를 거치며 ‘지출 행진’에 나선 아부다비의 존재감은 급부상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펀드들이 너무 빠르게 확장하다 보니 같은 투자건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베테랑 금융인들은 “은행가들이 같은 딜을 여러 아부다비 펀드에 동시에 제안했다”고 증언했다.

최악은 2010년대 중반 터졌다. IPIC가 말레이시아 1MDB 국부펀드 횡령 스캔들에 휘말린 것이다. 결국 18억달러를 물어내며 법정 분쟁을 마무리해야 했다. 첫 번째 큰 실패였다.

◇2016년 구조조정…3대 펀드 1조7000억달러 체제 완성

스캔들 이후 아부다비는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봤다. 펀드가 너무 많았다. 제각각 움직이다 보니 비효율적이었다.

정비가 시작됐다. 2016년 무바달라와 IPIC를 합쳤다. 2018년엔 국영기업들을 한곳에 모아 국부펀드 ADQ를 신설했다. 3대 펀드 체제가 완성됐다.

ADIA(1조1000억달러), 무바달라(3300억달러), ADQ(2630억달러). 각자 역할도 명확히 나눴다. ADIA는 장기 자산 관리, 무바달라는 소수 지분 투자, ADQ는 국영기업 중심 인수합병.

은행가들은 “최고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시스템을 제도화하며 정교한 딜 기계가 됐다”고 평가한다.

사진=나노바나나
◇타흐눈 주도 AI 투자…바이낸스·틱톡 지분 확보

이제 아부다비는 새로운 전쟁터로 향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다.

선봉에 선 인물은 타흐눈 빈 자이드 알나흐얀 셰이크다. 그는 ADQ와 ADIA 의장을 겸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타흐눈의 목표는 명확하다. 아부다비를 ‘지역 AI 초강국’으로 만드는 것.

무바달라와 AI 기업 G42가 공동 설립한 MGX는 칩과 AI 인프라에 수십억달러를 쏟아붓는다.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 20억달러를 투자했고, 틱톡 US 지분도 인수 중이다.

타흐눈의 자산운용사 루네이트도 분주하다. 올해 영국 헤지펀드 브레반 하워드 지분을 매입했고, 캐나다 투자그룹 브룩필드와 10억달러 규모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다.

아부다비 국부 운용의 핵심은 3명이다. 타흐눈 외에 무바달라 의장이자 맨체스터 시티 구단주인 만수르 셰이크, 그리고 2002년부터 무바달라를 이끌어온 비왕족 CEO 칼둔 알무바라크가 그들이다.

◇60년 만에 ‘자본의 수도’ 등극

60년 전 사막의 작은 점에서 출발한 아부다비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부 집중도를 자랑하는 도시가 됐다.

성공 공식은 단순했지만 실행은 쉽지 않았다. 조용히 저축하고, 위기를 기회로 삼고, 실패에서 배우고, 미래를 향해 다시 뛰는 것. ‘자본의 수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사진=나노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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