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포센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은 31일 이데일리와의 신년특별인터뷰에서 “이제 중요한 것은 총액이 아니라 집행의 방식이다”며 “3500억 달러라는 숫자에 집착할수록 한국의 부담은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번 합의를 “경제적 최적점에서 도출된 결과라기보다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고 규정했다.
애덤 포센 피터슨경제연구소 소장 (사진=AFP)
포센 소장의 시각에서 이번 합의의 성격은 분명하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정책을 두고 “규칙에 기반을 둔 일관된 산업 전략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계속 재조정되는 거래 중심 접근이다”고 평가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합의 자체보다 합의 이후를 관리하는 능력이 성패를 가른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마주한 과제 역시 명확하다. 이미 합의된 틀을 다시 흔드는 것이 아니라 그 틀 안에서 부담을 최소화하는 집행 전략을 설계하는 일이다. 포센 소장은 “정치적 합의는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지만 투자의 집행은 수년에 걸쳐 진행한다”며 “그 사이 정책 환경과 행정부 성향, 글로벌 경기 여건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센 소장은 3500억 달러라는 총액 자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이 정도 규모의 숫자는 협상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경제적으로 반드시 필요해서 도출한 최적의 해답으로 보기에는 어렵다”고 말했다. 합의한 숫자와 실제 집행 사이에는 의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대미 투자를 관세 정책의 연장선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글로벌 무역 질서의 ‘수호자’ 역할을 무상으로 제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며 “관세든 투자든, 동맹국에 비용을 분담시키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합의를 단기 이벤트로 보기보다 한국의 대미 경제 관계에서 비용 구조가 구조적으로 바뀌는 신호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센 소장은 “이미 합의가 이뤄진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선택은 숫자에 매여 경직적으로 집행하는 것이다”며 “집행을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치 일정에 맞추는 순간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고 말했다.
집행 전략에서 그가 가장 먼저 언급한 키워드는 방향이다. 포센 소장은 반도체와 조선, 일부 전기차(EV)와 관련 기술을 거론하며 “미국 내 수요가 분명하고 한국이 중국의 대체 공급자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산업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일본과 한국이 자동차 생산을 미국으로 옮겨 현지 시장을 공략했던 것과 유사한 접근이다”며 “수익률은 다소 낮아질 수 있지만 상업적으로 작동하는 차선책(second best)이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미국에 둔 생산 거점은 비용 구조상 제3국 수출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미국 내 판매를 전제로 한 산업을 선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투자의 속도 역시 핵심 변수다. 포센 소장은 “합의가 끝났다고 해서 투자를 서둘러 집행할 이유는 없다”며 “연차별로 나누고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 환경과 정책 기조는 수년 단위로 바뀐다”며 “시간을 분산시키는 것 자체가 강력한 리스크 관리 수단이다”고 강조했다.
애덤 포센 피터슨경제연구소 소장이 31일 신년 특별인터뷰로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의 대미 투자 전략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포센 소장은 집행 전략을 설명하면서 더 직설적인 표현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투자를 연차별로 분산하고 가능한 한 뒤쪽으로 배치할수록 현실적으로 애초 약속한 전액이 그대로 집행될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다”고 말했다. 이는 합의를 무력화하자는 뜻이 아니라 변화하는 정치·정책 환경 속에서 조정 여지를 확보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또 민간 자본의 활용을 중요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한국의 연기금과 가계 자산은 여전히 국내 편중이 강하다”며 “해외 투자 다변화 과정에서 일부를 미국 투자로 전환하고, 이를 합의 이행의 일부로 인정받는 방식은 경제적으로도 무리가 적다”고 말했다. 정부 재정이나 개별 기업의 직접 부담을 줄이면서도 정치적으로는 합의 이행이라는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카드라는 평가다.
포센 소장은 “이 같은 민간 투자 활용은 한국 경제에도 중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정치적 합의 이행과 자산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구조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합의한 상황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경직된 집행이다”며 “유연하게 나누고 천천히 가며 방향을 선별하는 전략이 앞으로 10년간 한국의 부담을 좌우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투자는 단순한 양보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 한국이 어떤 산업으로 살아남을지를 선택하는 과정이다”며 “3500억 달러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관리 능력이다”고 재차 강조했다.
▲포센 소장은
1966년 미국 브루클린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정치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97년 연방준비제도(Fed)에서 경제 분석을 담당했고 2009~2012년엔 영국 중앙은행(BOE) 통화정책위원을 지내며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에 참여했다. 미 재무부·연준·백악관의 정책 논의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왔다. 2013년부터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을 맡고 있다. 통화정책, 무역, 글로벌 거버넌스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경제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진단으로 정평이 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