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학점” “정부가 주도하지 마라”…전미경제학회서 본 韓경제 과제

해외

이데일리,

2026년 1월 06일, 오전 09:00

[필라델피아=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3~5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례회의는 AI 투자, 관세의 부작용, 환율과 자본 이동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겉으로는 다른 주제처럼 보였지만, 토론의 결론은 하나로 모였다.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정부의 의지가 아니라 신뢰와 제도라는 점이다. 회의 참석을 마치고 5일 한국 기자단과 만난 김성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국제금융학회장)는 한국 경제를 향해 “F학점을 주고 싶다”며 “정부가 주도해서는 안 된다”고 직격했다.

김성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국제금융학회장)와 장유순 인디애나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미경제학회장)이 5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 연례회의에서 한국기자단과 만나 대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김상윤 특파원)
◇환율은 ‘정책 변수’가 아니다…원화 약세의 본질은 신뢰

김 교수는 최근 원화 약세를 둘러싼 논쟁부터 문제 삼았다. 그는 원화가 저평가돼 있는 배경으로는 한국 경제 ‘신뢰’를 지목했다. 김 교수는 “서학개미 같은 특정 그룹을 찾아서 문제 삼으면 안 된다”며, 환율 문제를 개인 투자자나 특정 집단의 자본 이동 탓으로 돌리는 접근을 경계했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한국 주식과 기업이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인다면 “말리지 않아도 달러를 들고” 들어오겠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국내 유입이 정체된 반면, 한국 기업과 자본의 해외 유출은 지속적으로 늘어난 점을 구조적 변화로 짚었다.

정부의 환율 개입에 대해서도 분명한 선을 그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개입해서 환율을 낮출 수는 있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며 단기 처방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외환시장에 대한 행정적 압박이나 일시적 개입은 순간적인 안정 효과를 낼 수는 있지만, 원화 가치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해법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환율을 정책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투자와 신뢰의 결과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반복적으로 강조한 해법의 출발점은 노동시장이다. 김 교수는 “AI 시대에 맞게 노동시장을 유연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AI 확산으로 기업의 인력 수요와 직무 구성이 빠르게 바뀌는 상황에서 고용 조정이 경직돼 있으면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꺼리게 되고, 대신 자동화나 로봇으로 대체하려는 유인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신입 채용이 줄어들고 있는 현상을 이런 구조 변화의 신호로 봤다.

노동시장 경직성은 투자 환경에도 직결된다는 게 김 교수의 시각이다. 기업 입장에서 인건비와 고용 구조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없다면 국내 투자의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자본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국가와 시장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는 외국인 자본 유입 감소로 이어지고, 다시 환율 약세를 고착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성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국제금융학회장)
◇AI 육성의 유혹…정부 주도는 답이 아니다

AI 정책을 둘러싼 정부 역할에 대해서도 같은 문제의식이 이어졌다. 김 교수는 신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정부가 시장의 방향을 정하고 자원을 배분하려는 접근을 경계하며 “정부가 섣불리 시장 판을 깔거나 승자를 정하려 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주도하려고 그러지 말라”며 시장이 먼저 움직이도록 두고 명확한 부작용이 나타날 때 개입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다만 “현재 AI 산업은 미국과 중국 모두 국가 주도 성격이 강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정부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국가 차원의 투자와 지원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기술 경로와 사업 모델까지 정부가 설계하려 들 경우 실패 확률이 급격히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는 시장이 먼저 실험하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옥석이 가려진 뒤, 명확한 부작용이나 병목이 드러났을 때 정부가 개입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AI 투자 열기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김 교수는 신중론을 폈다. AI가 생산성과 효율을 높일 잠재력은 분명하지만, 투자 대비 성과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는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앞장서 방향을 정하기보다, 시장의 실험과 실패를 통해 자연스럽게 옥석이 가려지도록 두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판단이다.

함께 대담을 나눈 장유순 인디애나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미경제학회장)는 “AI 수요 확대가 전력·정치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며 데이터센터 투자와 에너지 인프라 부담이 단순한 산업 차원을 넘어 공공 정책과 정치적 판단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AI 투자 열기가 커질수록 정부의 역할 역시 커질 수밖에 없지만, 전력망·에너지 비용·지역 수용성 같은 제약을 무시한 채 투자 속도만 앞세우는 접근에는 한계가 있다는 취지다. AI 확산의 병목이 기술이 아니라 전력과 인프라로 옮겨가고 있는 만큼, 정책 역시 ‘얼마를 투자하느냐’보다 ‘어디서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장 교수는 AI 경쟁이 소프트웨어를 넘어 로봇·제조 현장으로 확산되는 흐름에 주목하며, 제조업 기반과 숙련 인력이 결합된 ‘피지컬 AI’ 영역에서 한국이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장유순 인디애나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미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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