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은행(ECB)은 디지털 유로를 통해 비자·마스터카드·페이팔 등 미국 결제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앞으로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스테이블 코인이 확산할 때를 대비해 유럽의 통화 주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달 “디지털 유로 출시를 위해 가능한 한 강력하고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미국 결제 인프라에 종속되면 미국이 정치적으로 내린 결정에 따라 어떤 금융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ECB는 2027년 시범 사업을 거쳐 2029년 디지털 유로를 정식 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현행 법 체계상 ECB는 실물 현금만 발행할 수 있어 유럽 의회의 입법 승인 없이는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이번 표결은 디지털 유로의 향방을 가를 최대 분수령으로 꼽힌다.
유럽 의회 내 찬성파도 통화 주권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체코 출신의 EPP 의원 루덱 니더마이어는 “디지털 유로는 전략적·경제적·정치적으로 중요하다”며 “필요한 기술적 시험과 시범 단계를 거친 뒤 가능한 한 빨리 도입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고 말했다. 반대 진영은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핵심 쟁점으로 제기하고 있다. 극우 성향의 유럽의회 내 ‘유럽을 위한 애국자들’ 그룹은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ECB가 디지털 유로를 이용해 시민이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며 “즉 디지털 유로를 검열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대안당도 “디지털 유로 도입은 현금의 점진적 대체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현금만이 유일하게 익명성을 보장하는 결제 수단이다”고 반대하고 있다.
ECB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해 “ECB가 개별 결제를 모니터링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전혀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자체 스테이블코인 개발에 투자 중인 유럽 은행권은 ECB의 디지털 유로 도입에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한 유럽 대형 금융사 소매 부문 책임자는 “ECB는 3억 500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결제 시스템을 출시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른다”고 지적했다. 막대한 비용, 엄청난 복잡성, 높은 실패 위험을 동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