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로 운명 갈림길…올 상반기 표결서 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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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6년 1월 06일, 오후 07:15

[이데일리 임유경 기자] 유럽 의회가 올해 상반기 유로존에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인 ‘디지털 유로’ 도입을 두고 표결을 진행한다. 가결에 필요한 다수표를 아직 확보하지 못해 여전히 도입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찬반 양측이 각각 ‘통화 주권’과 ‘검열 우려’를 내세워 대립하고 있다.

(사진=유럽연합 집행위원회)
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 의회에서 중도좌파 및 자유주의 진영이 디지털 유로 도입을 지지하고 있지만, 과반 확보에는 40표 이상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다. 극우 진영은 이를 전면 반대하고 있으며 나머지 중도우파 유럽인민당(EPP)과 유럽보수개혁당(ECR) 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유럽은행(ECB)은 디지털 유로를 통해 비자·마스터카드·페이팔 등 미국 결제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앞으로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스테이블 코인이 확산할 때를 대비해 유럽의 통화 주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달 “디지털 유로 출시를 위해 가능한 한 강력하고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미국 결제 인프라에 종속되면 미국이 정치적으로 내린 결정에 따라 어떤 금융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ECB는 2027년 시범 사업을 거쳐 2029년 디지털 유로를 정식 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현행 법 체계상 ECB는 실물 현금만 발행할 수 있어 유럽 의회의 입법 승인 없이는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이번 표결은 디지털 유로의 향방을 가를 최대 분수령으로 꼽힌다.

유럽 의회 내 찬성파도 통화 주권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체코 출신의 EPP 의원 루덱 니더마이어는 “디지털 유로는 전략적·경제적·정치적으로 중요하다”며 “필요한 기술적 시험과 시범 단계를 거친 뒤 가능한 한 빨리 도입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고 말했다. 반대 진영은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핵심 쟁점으로 제기하고 있다. 극우 성향의 유럽의회 내 ‘유럽을 위한 애국자들’ 그룹은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ECB가 디지털 유로를 이용해 시민이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며 “즉 디지털 유로를 검열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대안당도 “디지털 유로 도입은 현금의 점진적 대체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현금만이 유일하게 익명성을 보장하는 결제 수단이다”고 반대하고 있다.

ECB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해 “ECB가 개별 결제를 모니터링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전혀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자체 스테이블코인 개발에 투자 중인 유럽 은행권은 ECB의 디지털 유로 도입에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한 유럽 대형 금융사 소매 부문 책임자는 “ECB는 3억 500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결제 시스템을 출시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른다”고 지적했다. 막대한 비용, 엄청난 복잡성, 높은 실패 위험을 동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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