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모습. (사진=CNN방송 캡처)
8일(현지시간) CNN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이란에선 수도 테헤란을 포함해 100개 이상 도시에서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11일 전 테헤란에서 첫 시위가 발발한 이후 최대 규모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이번 시위는 지난달 28일 테헤란에서 시작됐다. 이란 리알화 가치가 급락하자 환전시장과 상점가 상인들을 중심으로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항의가 번졌다. 중앙은행이 일부 수입업자들에게 시중보다 저렴한 달러화를 제공하던 프로그램을 중단하면서 식용유, 닭고기 등 생필품 가격이 하룻밤 사이 급등했고, 일부 품목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같은 달 30일부터는 대학생들과 노동조합들까지 가세해 반정부 시위 성격을 띠며 여러 도시로 확산했다.
테헤란에선 일부 지역에 보안군이 대거 배치된 뒤 시위가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기도 했으나, 강경 진압이 잇따르자 시위는 되레 폭력적으로 변모했다. 이날 테헤란 서부 주요 도로에선 대규모 시위대가 모여 “독재자에게 죽음을” 등의 구호를 외쳤고, 주변을 지나는 차량들도 경적을 크게 울리며 지지를 보냈다.
시위는 이라크 국경 인접 지역인 일람(Ilam)과 로레스탄 등 서부 지방까지 번졌다. 이들 지역 시위대는 “하메네이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치며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퇴진을 요구했다. 마잔다란 지방에서 촬영된 영상에서도 시위대는 “이것은 피의 해다, 세예드 알리(하메네이)가 무너질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란 정부가 이날 전국 인터넷과 전화선을 차단한 것도 시위의 전국적인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인터넷 감시단체 넷블록스에 따르면 거의 100%에 달했던 이란 인터넷 연결률이 이날 오전 돌연 5%까지 떨어졌다.
넷블록스의 알프 토커 국장은 “전국적인 차단은 보안군이 시위대를 향해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할 경우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소식 확산을 막고, 국제 감시를 제한하려는 목적”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시위대는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망명을 떠난 이란의 마지막 황제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의 아들 레자 팔라비 왕세자의 시위 참여 요청에 호응했다.
팔라비 왕세자는 소셜미디어(SNS) 영상에서 이란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와 단결해 여러분들의 요구를 외쳐라”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슬람 공화국과 지도자, 이란혁명수비대에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린다. 억압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시위를 독려했다. 시위대는 “이것이 마지막 전투다, 팔라비가 돌아올 것이다”라고 외치는 영상으로 화답했다.
(사진=AFP)
이번 시위는 전통적으로 이슬람 공화국을 지지해온 바자르 상인들이 시위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1979년 이슬람 혁명 당시 성직자들에게 재정적 기반을 제공해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린 핵심 세력이다.
익명을 요청한 30세 테헤란 주민은 “이번 시위는 (과거와) 다르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정말로 아무것도 살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며 “물가가 거의 시간 단위로 계속 오르고 있지만, 어디에서 멈출지 아무도 모른다. 모두가 걱정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이란인권단체(IHRNGO)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시위 발발 이후 18세 미만 아동 8명을 포함해 최소 45명이 사망했다. 이 단체는 수백명이 부상을 입었고 2000명 이상이 구금됐다며 “국가 병력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실탄을 사용했고 일부 도시에서 광범위하고 대규모의 체포를 수행했다”고 비판했다.
이란 국영 파르스 통신은 시위 중 950명의 경찰과 60명의 준군사조직 바시지(Basij·친정부 민병대) 대원이 부상당했다며, 대부분이 서부 지방에서 “총기, 수류탄, 무기로 무장한 폭도들과의 대치에서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이란 서부 로레스탄주 아즈나의 경우 거주자 대부분이 이란 원주민인 루르 부족으로, 현재 가장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들(이란 정부)이 국민들을 죽이기 시작하면 우리가 그들을 매우 강하게 타격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이란 정부는 강경 진압으로 대응하고 있다.
뉴욕대 중동·이슬람 연구 부교수 아랑 케샤바르지안은 “이란 정치 지도자들 중 누구도 국가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청사진을 갖고 있지 않다. 지난 15년간 국민 대부분이 정권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현 정권이 그들의 말을 듣고 불만과 이익을 해결할 능력과 의지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란 정부에 남겨진 유일한 도구는 강압과 무력뿐”이라고 짚었다.
CNN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집권한지 1년 이상 지났지만, 그가 보호하겠다고 맹세한 바로 그 노동계급과 이란 사회의 근간을 형성하는 중산층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모든 부문에 걸쳐 있는 부패, 자금 관리 실패, 환경 문제, 정체된 리더십 등으로 현재 이란 정부는 벼랑 끝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