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14일(현지시간) 중국 장시성 간저우에 있는 웰라센트(Wellascent) 공장에서 구리 평선(copper flat wire) 생산 라인 위에 구리 봉(coil) 한 묶음이 놓여 있다. (사진=로이터)
거래가 성사되면 기업가치 2600억달러(약 379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광산업체가 탄생한다.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약 2070억달러(약 302조원)로, 호주 BHP(1610억달러)를 제치고 업계 1위에 오른다.
◇구리 가격 사상 최고가…“2040년 1000만톤 부족”
양사는 지난 2024년 말에도 M&A를 타진했으나 불발됐다. 이번에 협상을 재개한 배경에는 구리 시장의 급격한 변화가 있다. 구리 가격은 최근 톤당 1만3300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전기차·풍력발전 등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구리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 1곳에는 대량의 구리가 필요하고, 전력 인프라 구축에도 막대한 구리가 소요된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풍력발전은 석탄발전소보다 훨씬 많은 구리를 사용한다.
문제는 공급이다. 컨설팅업체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글로벌은 세계 구리 수요가 오는 2040년까지 50%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공급은 연간 1000만톤 이상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규 광산 개발도 쉽지 않다. S&P글로벌에 따르면 구리 광산 발견부터 생산까지 평균 17년이 걸린다. 최근 몇 년간 대규모 발견도 줄었고, 자원은 점점 더 깊은 지하에 매장돼 있다. 지난해 발견된 구리 자원 대부분도 이미 알려진 광산에서 나왔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광산업계는 신규 프로젝트만으로는 수익과 주가 성장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투자은행(IB) 제프리스는 “광산업계 메가 M&A가 돌아왔다”며 “새 광산을 짓는 것보다 M&A를 통해 빠르게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업계 전반에서 M&A가 활발하다. 지난해 9월 앵글로아메리칸과 캐나다 텍리소시스가 660억달러 규모 합병에 합의했다. 이 합병으로 세계 5대 구리 생산업체가 탄생할 예정이다.
세계 최대 광산업체 BHP도 최근 앵글로아메리칸 인수를 시도했으나 거부당했다. 제프리스는 “BHP는 앵글로아메리칸의 구리 자산을 원했고, 앵글로아메리칸은 텍리소시스의 구리 자산을 원했다”며 “리오틴토도 글렌코어의 구리 자산과 성장 프로젝트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글렌코어 “세계 최대 구리 생산업체 될 것”
현재 세계 6위 구리 생산업체인 글렌코어의 게리 네이글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2월 “세계 최대 구리 생산업체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르헨티나 엘 파촌 광산 등 신규 개발을 통해 오는 2035년까지 연간 구리 생산량을 현재의 2배인 160만톤으로 늘릴 계획이다.
글렌코어는 칠레 콜라우아시 광산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최대 구리 광산 중 하나로, 리오틴토가 오랫동안 탐내온 자산이다. 글렌코어는 이 밖에도 전 세계에 여러 구리 광산과 제련소, 정제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리오틴토의 구리 사업에는 미국 유타주 케네콧 광산이 포함된다. 또 애리조나주에서 개발 중인 프로젝트는 가동되면 미국 구리 수요의 4분의 1을 공급할 수 있다.
네이글 글렌코어 CEO는 지난해 12월 “광산업계는 기업 규모가 작아 영향력이 부족하다”며 “더 큰 회사를 만드는 것이 합리적이다. 단순히 규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시너지 창출, 영향력 확보, 인재 유치, 자본 유치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석탄 자산 처리가 최대 난제
양사 합병의 최대 걸림돌은 글렌코어의 석탄 사업이다. 글렌코어는 세계 최대 석탄 생산 및 거래 업체다. 반면 리오틴토는 2018년 마지막 석탄 광산을 글렌코어에 매각하며 석탄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다만 글렌코어는 지난해 5월 석탄 사업을 별도 호주 법인으로 분리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이를 통해 석탄 사업을 별도 회사로 분사하기가 더 쉬워졌다고 분석한다.
리오틴토 투자자인 윌슨애셋매니지먼트의 존 아유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석탄 자산 처리 방안이 아직 불분명하다”이라며 “석탄은 합병 회사가 가장 먼저 검토할 매각 대상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로이터, AFP
또 다른 가능성은 글렌코어가 먼저 석탄 사업을 매각한 뒤 리오틴토에 인수되는 시나리오다.
제프리스에 따르면 석탄을 제외한 합병 회사는 구리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고, 그 다음이 철광석과 알루미늄이 될 전망이다.
글렌코어의 방대한 원자재 트레이딩 사업도 변수다. 글렌코어는 광산 운영뿐 아니라 원자재 거래에서도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 트레이딩 사업이 합병에 포함될지는 불확실하다.
글렌코어는 니켈과 아연 같은 금속도 채굴한다. 리오틴토가 이 모든 자산과 사업을 인수하려 할지는 미지수다.
◇경영진 교체 후 M&A 적극 전환
리오틴토의 M&A 접근 방식은 최근 변화했다. 회사는 지난해 8월 사이먼 트롯을 신임 CEO로 선임했다. 도미닉 바튼 회장은 과거 일련의 실패한 인수합병에서 벗어나 인수에 더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트롯 CEO는 취임 직후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약속했다. 그는 지난달 비용 절감과 자산 매각 계획을 밝혔다. 캘리포니아의 대형 붕소 광산 등 여러 자산을 전략적 검토 대상에 올렸다.
전임 야콥 스타우숄름 CEO는 지난 2024년 말 글렌코어의 제안을 거부한 바 있다. 당시 협상은 기업가치 평가, CEO 선임, 글렌코어 석탄 광산의 미래 등을 놓고 결렬됐다.
리오틴토 주주인 윌슨애셋매니지먼트의 아유브 매니저는 “이번이 트롯 CEO의 첫 시험대”라며 “그의 규율 있는 접근 방식이 M&A에도 적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투자자들 “과다 지급” 우려
시장 반응은 엇갈렸다. 협상 재개 소식에 뉴욕 증시에서 글렌코어 주가는 8.8% 급등했다. 런던 증시에서도 8% 이상 올랐다. 반면 호주 증시의 리오틴토 주가는 6.3% 하락했다.
투자자들은 리오틴토가 과다 지급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리오틴토 주주인 아틀라스펀드매니지먼트의 휴 다이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대형 광산업체들의 인수합병 성과는 형편없다”며 “이런 대형 합병은 시장 정점에서 일어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주주 가치를 희석시킨다”고 지적했다.
리오틴토 투자자인 펀드매니저 앨런 그레이의 팀 힐리어 애널리스트는 “가격에 달려 있다”며 “큰 프리미엄을 지급해야 한다면 거래가 주주 가치를 파괴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리오틴토는 내부적으로 고성장 프로젝트 파이프라인이 탄탄하다”며 “왜 외부에서 할 일을 찾아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시드니 소재 플라티퍼스자산운용의 프라사드 파트카르 정성투자 책임자는 “리오가 투자자들에게 ‘단순화’를 강조해왔는데 글렌코어와 협상에 나선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3월 31일(현지시간) 촬영된 칠레 북부 안토파가스타에 위치한 BHP 빌리턴의 에스콘디다 광산 전경. 세계 최대 구리 광산이다. (사진=로이터)
중국의 반독점 심사도 주요 장애물이다. 중국은 산업용 금속의 최대 구매국이다. 칸 페커 RBC 애널리스트는 중국이 반독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두 회사의 문화 차이도 고려 대상이다. 글렌코어는 원자재 트레이딩 출신 기업으로 기회포착과 실적에 집중하는 문화를 가진 반면, 리오틴토는 전통적인 광산 기업이다.
리오틴토 주주인 아르고 인베스트먼트의 앤디 포스터 선임투자책임자는 “두 회사 문화가 가장 큰 의문”이라며 “글렌코어 문화의 일부 측면은 오히려 리오틴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월5일까지 공식 제안 또는 포기 선언
영국 인수합병 규정에 따라 리오틴토는 오는 2월 5일까지 글렌코어에 대한 공식 제안을 내놓거나 협상 중단을 선언해야 한다. 협상을 포기하면 6개월간 재추진할 수 없다.
제프리스는 “리오틴토가 상당한 인수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렌코어의 전 CEO 이반 글라센버그는 지난 2014년 리오틴토와의 결합을 제안한 바 있다. 그는 현재도 글렌코어 지분 약 10%를 보유하고 있다.
트리베카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의 벤 클리어리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번 거래는 매우 합리적”이라며 “업계에 남은 유일한 대형 실현 가능 거래”라고 평가했다.
제프리스는 “두 회사 간 합병 구조는 불확실하고 복잡할 가능성이 높지만, 양사 모두에게 상당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믿는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