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AI 전략 수정…시리 ‘두뇌’에 구글 제미나이 채택(종합)

해외

이데일리,

2026년 1월 13일, 오전 08:44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애플이 음성비서 시리(Siri)를 포함한 핵심 인공지능(AI) 기능에 구글의 AI 모델 ‘제미나이(Gemini)’를 채택하며, AI 경쟁 구도에서 전략적 전환에 나섰다. 애플은 그동안 자체 AI 생태계와 수직계열화를 강조해왔지만, 이번 결정으로 사실상 AI ‘두뇌’ 역할을 외부 파트너에 맡기는 방향을 공식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픽=제미나이 생성)
애플과 구글은 12일(현지시간) 공동 성명을 통해 차세대 애플 파운데이션(AI 기본) 모델을 구글의 인공지능 모델 ‘제미나이’와 클라우드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하는 다년 협력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양측은 “신중한 평가 끝에 구글의 기술이 애플 파운데이션 모델에 가장 역량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고 판단했다”며 “이번 협력을 통해 사용자들에게 혁신적인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애플은 올해 말께 선보일 개편된 시리에 제미나이 모델을 적용하고, 이를 향후 애플 인공지능 전략 전반에 활용하는 다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은 비독점적(non-exclusive) 형태로, 애플은 향후에도 다른 AI 모델과의 병행 활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미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애플은 제미나이 모델과 구글의 클라우드 기술을 차세대 애플 파운데이션 모델의 핵심 기반으로 활용할 계획이며, 연간 약 10억달러를 구글에 지급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글의 AI 기술은 이미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갤럭시 AI’에 적용돼 왔지만, 전 세계 20억대 이상 활성 기기를 보유한 애플 생태계에 본격 진입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을 구글 AI 기술에 대한 가장 강력한 신뢰의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애플의 이번 선택은 AI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온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애플은 2024년 ‘애플 인텔리전스(Apple Intelligence)’를 공개하며 사진 검색, 알림 요약 등 운영체제 전반에 AI 기능을 도입했지만, 경쟁사 대비 체감 혁신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음성비서 시리는 챗봇형 AI 경쟁이 본격화된 이후에도 뚜렷한 진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애플은 ‘더 개인화된 시리’ 출시를 여러 차례 연기해 왔으며, 회사 측은 개편된 시리가 올해 중 출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애플은 이번 제미나이 도입을 통해 시리의 자연어 이해와 추론 능력을 대폭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애플은 앞서 2024년 말부터 오픈AI의 챗GPT를 시리와 애플 인텔리전스에 연동해 복잡한 질의에 한해 활용해왔다. 애플은 “기존 챗GPT 통합에는 변화가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이번 제미나이 채택으로 오픈AI의 역할이 보조적 위치로 이동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애플은 내부적으로 이를 ‘멀티 모델 전략’의 일환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과거 앤스로픽 등 경쟁사 기술도 테스트한 바 있다.

리서치업체 에퀴사이츠 리서치의 파르트 탈사니아 최고경영자(CEO)는 “애플의 결정은 기본 지능 레이어를 구글에 맡기고, 챗GPT는 선택적·고난도 질의에 활용하는 구조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며 “애플 특유의 사용자 경험과 프라이버시 중심 전략은 유지하면서도 AI 성능 격차를 빠르게 좁히려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애플은 개인정보 보호 원칙이 이번 협력에서도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제미나이 모델은 애플 기기 내에서 직접 처리되거나 애플이 통제하는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트 환경에서 작동하며, 사용자 데이터는 기존 기준과 동일하게 보호된다는 설명이다. 애플은 “업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해온 개인정보보호 기준 역시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편 이번 협력은 구글이 반독점 규제 압박을 받는 가운데 이뤄졌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구글은 온라인 검색 시장에서의 독점 유지 혐의로 여러 건의 반독점 소송에 직면해 있으며, 이 과정에서 애플과의 관계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돼 왔다. 2024년 8월 미 연방법원은 구글이 애플 등과의 기본 검색엔진 계약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불법적으로 유지했다고 판결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아밋 메타 연방 판사는 구글이 애플과 체결했던 것과 같은 장기적·배타적 기본 계약을 제한하는 시정 명령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구글은 1년 이상 지속되는 배타적 기본 계약을 체결할 수 없게 됐다. 이번 제미나이 계약이 비독점 형태로 설계된 배경에도 이러한 규제 환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뉴욕증시에서 알파벳 주가는 이날 1.1% 상승하며 시가총액이 4조 달러를 넘어섰다. 알파벳은 지난해부터 AI 투자 확대와 낙관론 속에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해 왔다. 애플의 주가는 0.3% 상승하는 데 그쳤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