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달러로 제조업 부활 노리는 트럼프…'절대 안전자산'이 흔들린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1월 28일, 오후 07:01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달러 가치 하락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한 순간 외환시장은 이를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하나의 정책 신호로 받아들였다. 관세로 먼저 압박한 뒤 환율로 다시금 세계를 압박하는 트럼프식 통상 전략이 본격화한다는 해석이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약달러 용인한 트럼프 “달러 훌륭하다”

27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인덱스는 장중 95.55선까지 밀리며 4년 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최근 사흘간 낙폭은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관세를 발표한 직후 미국 주식·채권·달러가 동반 급락했던 이후 가장 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개입할 필요없이) 달러는 훌륭하다. 잘하고 있다”, “스스로 수준을 찾아가도록 두는 것이 공정하다”고 언급한 직후 달러는 낙폭 확대했다. 시장은 이를 약달러를 정책적으로 용인하겠다는 분명한 신호로 받아들였다.

시장에서는 이번 달러 약세를 단발성 발언이 아닌 그간 누적해온 정책 신호를 한꺼번에 반영한 결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엔화 급등을 촉발한 미·일 외환시장 공조 가능성이다. 도쿄 외환시장에서는 일본 정부의 환율 방어 개입설이 확산했고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금융기관을 상대로 엔화 환율 동향을 점검하는 이른바 ‘레이트 체크(rate check)’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공식적인 공동 개입 선언은 없었지만 당국의 ‘시장 점검’ 신호만으로도 엔화 숏 포지션(엔화 매도) 청산이 빠르게 진행됐다. 이 때문에 엔화는 단기간에 3% 가까이 반등했다.

지난해 8월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일본은행이 인플레이션 대응에 뒤처져 있다”며 금리 인상을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미 고위 당국자가 외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직접 비판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당시에도 미국이 일본의 ‘초 완화적’ 통화정책과 엔저를 문제 삼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 베선트 장관은 한국 원화 가치 하락이 한국의 경제 기초여건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엑스(X)와 미 재무부 성명을 통해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의 회동에서 원화 약세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최근 원화 약세는 한국의 강한 경제 기초여건과 맞지 않는다”, “외환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발언은 미국이 특정 동맹국 통화 움직임을 공개적으로 평가한 드문 사례로 꼽힌다. 이후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1일 신년기자간담회에서 “한두 달 새 환율이 1400원 전후로 떨어질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최근 환율 여건 변화에 대한 한미 당국 간 논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마러라고 합의와 맞물린 전략

이처럼 일본과 한국을 향한 연속적인 금리·환율 관련 발언, 미·일 공조 가능성 시사,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 연준 인선 불확실성 등이 맞물리며 달러를 떠받쳐온 ‘정책 신뢰 프리미엄’이 약화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달러 약세를 정책·정치·지정학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 복합적 결과로 보고 있다.

트럼프 경제 책사로 알려진 스티븐 마이런(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현 연방준비제도 이사)은 지난 2024년 11월 제시한 ‘글로벌 무역시스템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에서 미국의 만성적인 무역적자와 제조업 부진의 배경으로 달러의 구조적 고평가를 지목했다. ‘마러라고 합의’로 불리는 트럼프 행정부의 달러 절하 구상은

미국의 무역 적자 해소와 제조업 부활을 위해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10~20% 절하하고 이를 위해 주요국과 새로운 환율 합의(제2의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전략을 담고 있다. 동맹국이 보유한 단기 미 국채를 초장기 국채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달러 매도를 통해 달러 수요 구조를 바꾸는 구상까지 담았다. 관세는 압박과 협상의 수단으로, 환율은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복원하는 핵심 장치로 사용하겠다는 전략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아직 교역국에 국채 전환 카드까지 꺼내 들지 않았지만 현재 일련의 정책 구상은 마이런의 구상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아이오와주 클라이브로 향하기에 앞서 언론에 발언하고 있다. (사진=AFP)
◇기축통화 지위 시험대

약달러는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해온 제조업과 수출 기업에는 분명한 이점으로 작용한다. 달러 가치가 낮아지면 미국산 제품과 서비스의 달러 표시 가격이 내려가 해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제조업은 물론 항공기, IT 서비스, 에너지 수출 기업이 직접적인 수혜 대상이다. 관세로 글로벌 시장을 압박한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전략으로 환율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약달러는 양날의 검이다. 수입 물가 상승을 통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울 수 있고 달러 신뢰가 훼손된다면 자산 분산과 ‘탈달러’ 움직임을 촉발할 위험도 있다. 실제로 금값은 온스당 520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엔화와 유로화가 반등하며 ‘절대 안전자산’으로서 달러의 지위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급격한 평가절하보다는 수출 경쟁력을 보완하는 선에서 ‘관리된 약달러’를 용인하는 전략을 택하리라 내다보고 있다. 로버트 캐플란 골드만삭스 부회장(전 댈러스 연은 총재)은 “약달러는 수출에 도움이 되지만 40조 달러에 육박하는 미 부채를 고려하면 통화 안정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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