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아스투토(Ugo Astuto) 주한 유럽연합 대사는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EU와 한국 간 전략적 파트너십이 무역을 넘어 안보·국방·디지털·환경까지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주한 EU대표부 대사로 부임한 아스투토 대사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1991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주인도·부탄 EU 대사 등을 역임한 베테랑 외교관이다.
아스투토 대사는 “2011년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양자 관계가 지속 발전해 왔다”며 “EU는 한국의 상품 부문 최대 교역 파트너로서 성공적인 교역 관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EU는 한국을 ‘유사입장국(like-minded partner)’으로 분류하며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삼고 있다. 양측은 2024년 안보·국방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한국은 지난해 12월 EU의 대표적 연구·혁신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에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준회원국 자격으로 참여하게 됐다.
우고 아스투토 주한 유럽연합(EU) 대사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스투토 대사는 이날 한-EU 간 공급망 안보 강화를 위한 전담 대화채널 출범 계획을 밝혔다. 그는 “EU는 한국과의 공급망 관련 중점 대화채널 출범을 결정했다”며 “1차 회의가 머지않아 개최할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22일 브뤼셀에서 열린 외교장관급 한-EU 전략 대화와는 별개의 채널이다.
아스투토 대사는 “안정적이고 신뢰 가능한 공급망 구축이 한-EU 협력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라며 “정기적인 대화를 통해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분야 협력도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아스투토 대사는 “한-EU FTA가 그린 파트너십, 디지털 파트너십으로 보완되고 있다”며 “AI, 퀀텀 컴퓨팅 등 가장 혁신적인 분야에서도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한-EU 디지털 무역협정이 최종 단계에 이르렀고, 데이터 적정성 결정도 완료돼 양측 간 신뢰 기반의 자유로운 데이터 흐름이 가능해졌다.
◇“EU 국방 예산 사상 최대…韓 방산업체와 협력”
EU가 올해 국방 예산을 사상 최대로 증액하는 가운데 한국 방산업체가 EU의 주요 무기 공급자로 주목받고 있다. 아스투토 대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5년째 이어지면서 EU는 자체 국방 역량 강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며 “나토 차원에서 국방예산 증액 합의가 이뤄졌고, EU도 탄약생산지원법(ASAP) 등 회원국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 방산업체들이 이미 EU 여러 회원국과 활발하게 협력하며 주요 공급자로 부상했다”며 “러시아 위협이 지속할 것으로 보여 EU의 국방 강화가 확대하면서 한국 방산업체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고 전망했다.
대사는 특히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을 언급하며 “유럽 안보와 인도태평양 안보가 상호 연계돼 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우고 아스투토 주한 유럽연합(EU) 대사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U가 북극 전략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아스투토 대사는 “EU는 북극에 대한 새로운 정책 보고서를 준비 중이다”며 “변화한 환경을 반영하되 취약한 환경 보호, 평화 유지, 원주민 권리 존중이라는 3대 원칙은 유지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북극에서 군사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EU는 미국,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함께 북극 안보 패키지를 준비 중이다”며 “막대한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올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매입 발언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아스투토 대사는 그린란드 주권을 명확히 지지했다. 그는 “그린란드 문제는 그린란드 주민이 결정할 문제다”며 “주권을 가진 국민이 스스로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덴마크가 EU 회원국이므로 EU가 지원과 협력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U의 그린란드 자원 개발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대사는 “한국 기업이 관련 전문성과 기술을 갖고 있지만 그린란드는 환경이 취약하고 자원 개발이 어려운 환경”이라며 “구체적인 협력 가능성을 말하기는 시기상조”라고 답했다.
◇“CBAM, 무역 조치 아냐…K-ETS 인정해 이중과세 없어”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올해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한국 기업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아스투토 대사는 “CBAM은 무역 장벽이 아닌 환경 조치”라고 못 박았다.
CBAM은 EU로 수출되는 철강·시멘트·알루미늄 등 탄소 다배출 제품에 대해 탄소배출량만큼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2023~2025년 과도기를 거쳐 올해부터 실제 인증서 구매 의무가 발생했다.
아스투토 대사는 “CBAM의 목표는 철강이나 시멘트 같은 고오염 산업을 친환경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무역 관련 조치가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환경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K-ETS(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고 있어 이를 인정받아 CBAM 인증서 비용에서 공제받을 수 있다”며 “2년 과도기 동안 한국 정부, 업계와 정기적으로 협의하면서 규제를 단순화했다”고 설명했다.
대사는 “유럽에서만 배출량을 감축하면 고오염 산업이 규제가 덜한 해외로 이전하는 탄소 누출이 발생한다”며 “한국과 EU는 고오염 산업을 친환경으로 만든다는 공통 목표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관세에도 “규범·파트너십 강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해서는 “EU는 규범에 기반을 둔 예측 가능하며 다자주의에 기반을 둔 무역 정책을 견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스투토 대사는 “EU는 최근 인도와 FTA 합의에 이르는 등 파트너십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있다”며 “EU는 항상 분절보다는 협력, 불확실성보다는 파트너십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EU의 FTA가 그러한 전략적 선택의 성공 사례”라며 “명확한 규범과 안정적인 시장 접근, 공동의 원칙에 입각한 협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2011년 발효된 한-EU FTA는 과거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며 “교역이 지속 증대되고 있고, 파트너십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가장 혁신적인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스투토 대사는 “전 세계적으로 부정적인 사건이 많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유사 입장국끼리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제법을 준수하고 유엔(UN) 헌장을 수호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다”고 강조했다.
우고 아스투토 주한 유럽연합(EU) 대사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