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전문가들은 워시 지명자 앞에 놓인 시험대를 연준 대차대조표 축소, 인플레이션 안정,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라는 세 가지 과제로 압축하고 있다. 특히 연준의 ‘몸집’과 정책 독립성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떠오르면서 차기 의장의 선택 하나하나가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워시 지명자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연준이 통화정책의 경계를 넘어 과도하게 개입해 왔다고 공개 비판해 온 인물이다. 연준의 대규모 자산 매입이 정부 재정지출 확대를 쉽게 만들고 시장 신호를 왜곡해 결국 인플레이션을 키웠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문제의식이다. 워시 지명자는 2006~2011년 연준 이사로 재직하며 금융위기 당시 벤 버냉키 의장과 함께 양적완화(QE)에 참여했지만 이후 자산 매입이 상시적 정책 수단으로 굳어졌다고 비판했다. 연준의 자산 규모는 2008년 9000억 달러 미만에서 2022년 약 9조 달러까지 불어난 뒤 양적긴축(QT)을 거쳐 현재는 6조 6000억달러 수준이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지난해 말 은행권 준비금 부족 조짐이 나타나자 최근 대차대조표 축소를 사실상 멈췄다. 워시 지명자는 연준의 ‘몸집’을 더 줄여야 한다고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2019년 QT 국면에서 나타난 금융시장 급변은 여전히 정책 리스크로 남아 있다. 국채 보유 축소가 장기금리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끌어올리면 금리 인하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책 충돌 가능성도 있다.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시장은 무엇이 가능한지,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분명히 보여준다”며 “연준이 국채 보유를 크게 줄이면 장기 차입 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인도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는 “정부가 막대한 자금 조달이 필요한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국채를 대거 매입한다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경계는 흐려질 수밖에 없다”며 그의 문제의식에 일정 부분 공감을 나타냈다.
케빈 워시 차기 연방준비제도 의장 지명자가 2017년 5월 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손 인베스트먼트 콘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현재 미국의 근원 인플레이션은 3% 안팎으로 연준 목표치 2%를 웃돌고 있다. 그는 금리를 떨어트리려면 물가를 목표 수준으로 낮추고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신뢰 가능한 정책 프레임을 제시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워시 지명자는 실업률이나 경기 과열 여부 같은 지표를 중심으로 물가를 설명해 온 기존 거시경제 모델에 회의적인 주장을 그간 해왔다. 대신 통화 공급 규모와 자산·원자재 가격 흐름, 정부 재정지출, 생산성 변화 등 더 폭넓은 요인을 함께 살펴야 물가 움직임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그는 인공지능(AI) 주도의 생산성 향상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흡수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FT 인터뷰에서 “AI·로봇·생명과학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변화는 인플레이션을 바라보는 틀 자체를 바꾸고 있다”며 “워시는 연준의 방대한 연구 역량을 이 방향으로 재배치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연준을 비롯해 시장에서는 AI 생산성 효과가 단기간에 물가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신중론이 우세하다.
◇“경제에 옳은 결정 내려야 하는 위치”
월가 일각에서는 워시 지명자가 백악관 내부 인사였던 다른 후보보다 연준 독립성을 더 중시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 그의 지명을 지지해 왔다. 그러나 연준 내 대표적 ‘매파’로 꼽혔던 워시 지명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에 공개적으로 호응해 왔고 연준 의장 후보군에 꼽히면서 지난해 말에도 추가 인하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기 당시 워시 지명자와 함께 일했던 도널드 콘 전 연준 부의장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워시는 자신이 원하는 정책 방향을 뒷받침하기 위해 상당한 분석과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연준 의장은 결국 정치적 수사를 넘어 경제에 옳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위치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워시 지명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예스맨’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줘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연준 의장은 FOMC에서 단 한 표만을 행사하며, 정책 결정은 위원들의 다수결로 이뤄지는 만큼 그가 위원들을 충분히 설득시키느냐도 관건이다. 제롬 파월 의장 역시 지난해 말 금리 인하를 두고 위원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이견에 직면하면서 이를 조율하는 데 상당한 정치력을 발휘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