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반 업무 자동화 도구가 빠르게 진화하면서 법률·데이터 분석·마케팅 등 그동안 고부가가치 전문 영역으로 여겨졌던 업무까지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 시장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에 따라 안정적인 구독 수익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소프트웨어와 정보·전문 서비스 기업의 핵심 수익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앤스로픽의 대형언어모델 ‘클로드(Claude)’ 로고. 클로드 기반 업무 자동화 도구가 법률·정보서비스 기업들의 핵심 수익 모델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AI 스타트업 앤스로픽이다. 앤스로픽은 최근 자사 대형언어모델(LLM) ‘클로드(Claude)’ 기반 협업 플랫폼인 ‘클로드 코워크(Cowork)’에 법률·영업·마케팅·데이터 분석 업무를 자동화하는 플러그인을 추가했다.
‘클로드 코워크’는 단순한 챗봇을 넘어 기업의 내부 업무 흐름에 깊숙이 연결하는 AI 협업·자동화 플랫폼이다. 기업 내부 문서와 데이터베이스, 이메일, 계약서, 외부 데이터셋을 연동해 질문 응답부터 요약·분석·문서 작성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처리하도록 설계했다. 특히 최근 추가한 자동화 플러그인은 특정 업무 영역을 정밀하게 겨냥한다. 법률 분야에서는 계약서 검토·요약과 법률 리서치, 규제 준수 점검, 법률 보고서 초안 작성이 가능하고 데이터 분석 플러그인은 기업의 재무·운영 데이터를 외부 데이터와 결합해 분석과 시각화까지 수행한다. 영업과 마케팅 영역에서도 고객 데이터 분석, 제안서와 캠페인 문안 작성, 성과 요약 자동화가 가능하다.
시장에서는 이번 충격의 본질을 단순한 AI 법무, 데이터분석 서비스의 등장이 아니라 AI의 역할 변화에서 찾고 있다. 과거에도 법률 특화 AI나 계약서 분석 도구는 존재했지만 대부분은 기존 인력을 보조하는 생산성 도구에 머물렀다.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을 뿐 법률 데이터베이스나 소프트웨어 기업의 수익 구조를 직접 위협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클로드 코워크 플러그인은 법률·데이터 분석·마케팅 등 여러 전문 영역을 하나의 AI 플랫폼에서 통합적으로 자동화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AI 기업이 법률 소프트웨어 업체에 기술을 공급하는 ‘조력자’ 역할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계약 검토와 문서 분류 같은 핵심 기능을 플랫폼 안에 직접 구현하며 정면 경쟁자로 나섰다는 것이다. AI가 법률·정보·전문 서비스 기업의 핵심 기능을 직접 대체할 수 있다는 인식이 본격화한 셈이다.
캐나다 토론토의 AGF 인베스트먼트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마이크 아치볼드는 로이터에 “앤스로픽이 법률 영역을 직접 겨냥한 플러그인을 내놓았다”며 “이 분야는 톰슨로이터가 상당한 매출을 올리는 핵심 영역이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우려는 주가에 즉각 반영됐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톰슨로이터 주가는 15.7% 급락했다. 법률 데이터베이스 ‘웨스트로(Westlaw)’를 보유한 톰슨로이터는 AI 기반 법률 자동화 도구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토니 캐플런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투자자 노트에서 “최근 투자자와의 논의에서 톰슨로이터에 대해 압도적으로 약세 의견이 많았다”며 “특화한 AI 법률 도구와의 경쟁 심화로 법률 부문의 성장세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에서도 충격파는 컸다. 법률 정보·분석 플랫폼 ‘렉시스넥시스’를 보유한 렐엑스 주가는 하루 만에 14% 넘게 급락했고 네덜란드의 볼터스 클루워도 13.2% 급락했다. 슈로더스의 조너선 맥멀런 애널리스트는 “앤스로픽의 법률 자동화 도구가 렐엑스 같은 기존 강자를 정면으로 위협하고 있다”며 “AI 발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과거의 ‘수익 가시성 프리미엄’은 더는 유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미국 내 다른 전문 서비스 기업도 줄줄이 약세를 보였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팩트셋과 모닝스타는 각각 10.5%, 9.1% 하락했고 온라인 법률 서비스 업체 리걸줌닷컴 주가는 19.7% 폭락했다. 런던 증시에서도 익스피리언(-6.5%),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 -12.4%), 피어슨(-7.6%) 등이 일제히 하락했다.
노무라의 찰리 맥엘리것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소프트웨어 업종이 말 그대로 얻어맞고 있다”며 “아이러니하게도 전날까지만 해도 AI 하이퍼스케일러 트레이드에 안도하던 시장이 이제는 AI 도입의 2차 충격을 정면으로 맞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퍼스케일러 역시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존스 트레이딩의 마이크 오루크는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같은 하이퍼스케일러의 고객이다”며 “컴퓨팅 파워를 사야 할 기업이 오히려 AI때문에 흔들린다면 그 여파는 하이퍼스케일러로도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엔비디아(-2.8%), 마이크로소프트(-2.9%), 오라클(-3.4%) 등도 동반 하락했다.
한편 앤스로픽에 약 1억 달러(약 1450억원)를 투자해 2%가량 지분을 확보한 SK텔레콤은 연초 이후 주가가 약 40% 상승, 이동통신 3사 중 가장 강한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