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반·차 뒤이을 숨은 수출 역군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2월 06일, 오전 05:01

[황재훈 연세대 정경대학 경영학부 교수]지난해 대한민국은 연간 수출액 약 7097억 달러(약 1030조)를 달성하며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연간 수출액 7000억 달러를 돌파한 나라가 됐다. 이는 6000억 달러 달성 이후 7년 만에 이뤄낸 성과로 글로벌 경기침체 압박 속에서도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반도체와 자동차, 그리고 조선업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산업은 수출 규모 면에서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핵심축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최근 수출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중의 인식만큼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수출통계와 한국무역협회(KITA), 산업통상부 발표 등을 종합해 보면 반도체(24~25%), 자동차(10~12%), 선박(4~5%) 등 주요 3개 산업의 수출 비중을 더해 보면 전체 수출의 절반을 넘지 않는다.

비중 자체보다는 ‘성장 방식’에 주목해 볼 필요성이 있다. 수출 주요 3대 산업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성숙 단계에 진입한 상황이다. 높은 기술력과 생산 역량을 바탕으로 점유율은 유지하고 있지만 이들 산업만으로 한국 경제의 중장기 성장률을 다시 끌어올리기에는 구조적 제약이 분명하다. 최근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투자가 집중되며 반도체의 경우는 올해 수출비중이 높아질 것이 자명하지만 제조업을 강점으로 하는 한국에서는 소수 분야에 집중되는 것 역시 큰 문제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은 ‘포트폴리오의 확장’이다.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아직 대중의 관심 밖에 있는 기업과 산업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자가격표시기(ESL) 기업 솔루엠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기업이지만 해외 기업에는 더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솔루엠은 ‘제품 수출’이 아니라 ‘시스템 수출’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 제조업과 다른 성장 궤적을 지닌다. 우리 모두 아는 글로벌 유통기업의 매장 운영 시스템에 들어가 가격, 재고, 에너지 관리까지 연결되는 리테일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호평 받고 있으며 이미 인도네시아 발리 ‘페피토’(Pepito), 태국 ‘시암 마크로’(Siam Makro), 캐나다 ‘로블로 컴퍼니스’(Loblaw Companies Limited) 등 각국의 굵직한 리테일러들과 계약을 맺고 있기도 하다.

이와 유사한 흐름은 산업 자동화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글로벌 스마트에너지 솔루션 기업 ‘엘에스 일렉트릭’은 공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만드는 제어·전력·보안 시스템 기업으로 글로벌 제조업 전환의 수혜를 받고 있다. 특정 산업에 종속되지 않고 반도체·자동차·배터리·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 가능해 주목 받고 있다.

글로벌 분자진단 전문기업 ‘씨젠’, 의료 AI 기업 ‘루닛’ 등 헬스케어 영역에서도 해외에서 활약하는 국내 기업들이 많다. 신약 개발이라는 고위험 모델 대신 진단 자동화나 의료 영상 분석 등 병원 시스템에 깊이 결합되는 기술로 해외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규제와 신뢰라는 높은 장벽을 넘은 이후에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고 평가된다.

이들 기업은 모두 장기 성장성과 고용 파급 효과가 크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대부분 기업간 거래(B2B) 중심으로 특정 국가나 산업에 한정되지 않고 확장이 가능해 대한민국 수출 산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중이다.

한국 경제의 다음 성장 동력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새로운 산업’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존재하지만 충분히 조명받지 못한 기업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수출 방식에 답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의 다음 성장 동력을 묻는 질문에 답하려면 조용히 글로벌 현장에서 검증받고 있는 기업들을 더 주의 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