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거래의 89%…'알고리즘 매매'가 주식·금값 폭락 주범

해외

이데일리,

2026년 2월 13일, 오후 05:53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2010년 5월 6일 미국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가 5분 만에 약 1000포인트 폭락하며 시가총액 약 1조 달러(약 1443조원)가 증발했다. 영국의 개인 트레이더 나빈더 싱 사라오가 자체 제작한 알고리즘으로 E-미니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선물에 대량 허위 매도 주문(스푸핑)을 냈고 다른 알고리즘 봇(bot)이 이를 실제 매도 압력으로 인식해 연쇄 매도를 촉발한 것이다. 일명 ‘플래시 크래시’로 불리는 이 사건은 알고리즘 매매의 위험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거래량 중 절반 이상, 미국은 최소 60~70% 이상이 알고리즘 매매로 이뤄지고 있으며 최근엔 AI 발달과 함께 전 세계 금융시장 거래량의 약 89%가 AI 기반 알고리즘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12일(현지시간) 미국 금융시장에서 위험자산인 주식과 안전자산인 금 가격이 동반 하락하는 ‘이례적’ 현상이 발생했다. 이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일보다 1.34% 하락했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도 각각 1.57%, 2.04% 내렸다. 인공지능(AI)이 산업 전반을 위협한다는 우려가 매도세를 촉발했다.

이 과정에서 안전자산인 금 가격도 급작스런 하락세를 보였다. 통상적으로 주가가 하락하면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금으로 몰려 금값이 오른다. 하지만 이날 금 현물 가격은 뉴욕시간으로 오후 4시 22분 기준 전일보다 3.2% 하락해 온스당 4920.7달러(약 710만원)에 거래됐다.

전문가들은 상품거래자문사(CTA) 커뮤니티의 알고리즘이 연쇄 매도에 나선 것을 주된 원인으로 지목했다. 블룸버그 산하 마켓라이브(MLIV)의 마이클 볼 거시 전략가는 “특정 가격 수준이 무너지면 이러한 매도세가 나타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알고리즘 매매란 사람이 직접 사고팔기를 결정하는 대신, 컴퓨터 프로그램이 미리 설정한 규칙에 따라 자동으로 주문을 내는 거래 방식이다. 가격 추세, 거래량, 변동성 등 시장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조건이 충족되면 밀리초(1000분의 1초) 단위로 매수·매도를 실행한다. 1초에 수백 건의 주문을 처리할 수 있어 빠른 ‘손절매’가 가능해 주로 기관 투자자가 사용한다. 감정 개입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봇 매매’라고도 불린다.

지난달 29일 금 가격이 급작스럽게 폭락하며 10년여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을 때에도 중국 투기세력의 알고리즘 매매가 있었다. ‘추세 추종’(Trend Following) 전략에 따라 자산 가격 하락이 또 다른 알고리즘 매도를 촉발하는 이른바 ‘둠 루프’(doom loop) 현상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알고리즘 매매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이미 핵심 거래 기법으로 자리를 꿰찼다. 골드만삭스 뉴욕 본사의 주식 트레이딩 플로어에는 2000년까지만 해도 600여명이 근무했지만 2017년 이후엔 단 2명만 남았다. 나머지는 모두 컴퓨터 엔지니어로 대체됐다. 지난 10여년 간 가상자산 랠리와 더불어 알고리즘 매매가 더욱 일상화하는 추세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외환·파생상품·주식·채권 거래 등의 알고리즘 시장 규모는 2024년 210억 6000만 달러(약 30조 4000억원)로 추산됐다. 또한 이 시장은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12.9% 성장해 429억 9000만 달러(약 6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거래량 기준으론 골드만삭스·아이트그룹이 하루에 최소 3조 7000억 달러(약 5340조 2100억원)가 알고리즘 매매로 이뤄진다고 추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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