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는 소비자 시장에서는 오랜 기간 세계 1위 지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빌더(건축업체)에 가전을 공급하는 북미 B2B 시장은 전혀 다른 환경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과 월풀이 오랜 업력을 바탕으로 구축해온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이다. 업계에 따르면 GE가 약 30%, 월풀이 약 1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LG전자는 약 8% 수준이다. 단순한 브랜드 위상만으로는 공략이 쉽지 않고 네트워크 기반의 공급 신뢰와 납기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곽도영 북미지역대표(부사장)는 “빌더는 제품 성능보다 일정 준수를 더 중요하게 본다”며 “한 채라도 납기가 어긋나면 준공이 지연되고, 매출이 멈추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과 네트워크 중심의 시장이어서 신규 업체가 안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LG전자가 먼저 집중한 것은 ‘라스트마일(Last-mile)’ 인프라 구축이다. 빌더가 요구하는 일정에 맞춰 가전과 공조 장비를 차질 없이 공급·설치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선결 과제라는 판단이다. 곽 부사장은 “북미 전역에서 계획대로 배송·설치할 수 있는 체계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 조건”이라며 “올해 관련 투자를 확대하고, 전문 파트너와 협업해 실행력을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GE는 미국 전역에 약 130개의 물류 허브를 운영 중이다. LG 역시 해당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 확보도 관건이다. 빌더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본 4종 패키지(쿡탑·후드·냉장고·실외기 등)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LG전자는 프리미엄 전략을 유지하되, 엔트리 레벨 주택에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격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곽 부사장은 “현재는 일부 출혈을 감수하는 단계지만, 엔트리 구간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그 기반 위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 트레이드업을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LG의 전략은 납기와 가격 경쟁에만 머물지 않는다. IT 기술력을 접목해 설치 이후 운영·관리 영역까지 사업 범위를 확장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LG전자는 ‘씽큐 프로’를 통해 멀티패밀리 단지(MDU)의 가전 상태, 보증 정보, 고장 이력 등을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을 선보였다. 가전 공급과 동시에 운영 관리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경쟁사 대비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백 부사장은 “프로퍼티 매니저(임대주택관리자)는 수백 세대의 가전을 관리해야 하는데, 고장 원인이나 보증 기간을 일일이 확인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며 “씽큐 프로는 시리얼 번호, 보증 상태, 고장 이력 등을 즉시 확인할 수 있어 운영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세탁기와 식기세척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누수를 사전에 감지해 피해를 줄이고 보험 클레임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글로벌 통상변화에 대한 대응책에 대해선 유연한 생산 체제를 내세웠다. 백 부사장은 “관세와 공급망 불확실성에 대비해 글로벌 생산기지 물량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스윙 생산’ 체제를 구축해놓았다”며 “미국 테네시 클락스빌 가전공장의 추가 투자 계획은 현재 없지만,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생산은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지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