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돌려받을 수 있나" 워룸 가동…기업들 '혼돈의 주말'

해외

이데일리,

2026년 2월 22일, 오후 02:37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를 무효로 판결했지만, 정작 미국 기업들은 환급은커녕 새로운 불확실성 앞에 놓였다. 법원이 관세 환급 방법이나 절차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지 않은 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별도의 법적 근거를 내세운 새로운 15% 전 세계 관세를 발표하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관세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2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번 판결 소식에 기업 경영진들은 환호 대신 법률 의견서 더미를 붙잡고 앉았다. 가구 제조업체 에단앨런의 파루크 카트와리 최고경영자(CEO)는 판결 직후 “잠시 안도했다”고 했지만, 곧 동료들의 이메일 세례를 받았다. 멕시코 법인 책임자는 “좋은 소식”이라고 썼지만, 상품 기획 담당 임원은 불과 몇 분 뒤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이어 “법원이 환급에 대한 지침을 내놓지 않은 만큼, 기업들은 계속 관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메일이 추가로 왔다. 카트와리 CEO는 “좀 복잡하다”고 했다.

◇환급 요구 목소리…실현 가능성은 불투명

소매업, 의류업 등 업종별 단체들은 기업들이 납부한 수십억 달러의 관세를 신속히 돌려받아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전미소매협회(NRF)는 “미국 수입업자들에게 관세를 환급하기 위한 원활한 절차를 법원이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환급이 이뤄질 경우 20만개 이상의 중소 수입업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환급이 순탄하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일부 변호사들은 환급을 받으려면 별도의 소송을 제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로펌 피셔 필립스의 데이비드 도리 파트너는 “환급이 자동으로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며 “추진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미결 과제들이 있다”고 말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도 “환급 관련 소송이 수개월 이상 이어질 수 있고, 미국 국민이 실제로 돌려받을 것 같지는 않다”고 선을 그었다.

불확실성이 커지자 일부 기업은 환급을 기다리지 않고 선제적으로 움직였다. 유아용품·완구 제조업체 키즈2(Kids2)는 1500만 달러(약 217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잠재적 환급금의 절반가량을 헤지펀드에 미리 매각했다. 이 회사의 마크 민트만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환급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계약을 체결한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플로리다 휴가지에서 문자 메시지로 판결 소식을 접한 뒤 170쪽 분량의 판결문을 챗GPT에 입력해 요약본을 받았다고도 전했다. 그는 “감정적 반응은 무덤덤하다. 작은 승리 정도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고객들이 환급 요구할까 겁난다”

환급 기대보다 환급 요구에 따른 피해를 걱정하는 기업도 있다. 펜실베이니아주 워링턴의 웨딩·턱시도 전문 매장 다리아나 브라이달의 공동 대표 프랑코 살레르노는 “맨 처음 든 생각이 ‘세상에, 모든 고객이 관세 환급을 요구하겠구나’였다”고 말했다. 관세 발효 이후 웨딩 드레스 가격이 평균 8~14% 오른 상황에서다. 살레르노는 “법원이 환급을 명령하더라도 내 공급업체 중 일부는 나에게 환급을 해주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며 13명 규모 사업의 순손실 가능성을 우려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브래디 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AFP)
◇“끊임없이 시뮬레이션 중”…대기업들은 워룸 가동

대기업들은 일찌감치 워룸(war room·상황별 시나리오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전담 대응반)을 가동하며 준비에 나선 상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크리스토프 슈바이처 CEO는 “가장 정교한 글로벌 기업들은 판결의 영향을 몇 시간 안에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며 “이들은 끊임없이 모델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참치 통조림 업체 ‘치킨 오브 더 씨 인터내셔널’은 이번 판결이 조지아주 공장의 생산 정상화로 이어질지 검토 중이다. 이 회사는 태국·베트남 등지에서 수입하는 냉동 참치에 15~20%의 관세를 부담하면서 지난해 가을 이후 1000만 달러(약 145억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했고, 250명이 근무하는 이 공장의 가동 일수를 주 5일에서 4일로 줄인 상태다. 앤디 멕스 사장은 “비용 경쟁력이 갖춰진다면 생산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결 기다리다 이미 ‘폐업 수순’

일부 기업들에게는 이번 판결이 너무 늦은 측면이 있다. 캘리포니아주 스키웨어 업체 닐스 스키웨어는 지난해 말 2026~2027시즌 라인을 출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창업 47년째를 맞은 이 회사의 리처드 레플러 사장은 “현재 경영진으로서는 사실상 폐업 수순”이라고 말했다. 닐스는 지난해 높은 관세율을 고스란히 부담하며 소규모 손실을 기록했고, 이를 판매가에 반영했다면 400~600달러짜리 방한 파카에 200달러가 추가됐을 것이라고 했다. 레플러 사장은 “판결이 지난해 가을에 나왔더라면 사업을 이어갈 수도 있었다”며 “돈을 일부 돌려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계속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공급망 재편에 나선 기업들도 섣부른 되돌리기를 자제하고 있다. 요리사용 작업복 제조업체 틸릿(Tilit)은 관세 부과 이후 생산 기지 대부분을 중국에서 멕시코·콜롬비아로 옮겼고, 이집트에도 새 공장을 짓고 있다. 제니 굿맨 CEO는 이번 판결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지난해 중국에서 들어온 특별 주문 건에 납부한 관세를 돌려받을 수 있느냐”라며 “이제는 충분히 검토해볼 사안이 됐다”고 밝혔다. 굿맨 CEO는 당시 해당 주문이 “처음 견적 때보다 40% 더 비쌌다”고 전했다.

2026년 2월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광범위한 관세 정책을 위헌으로 판단한 판결을 공개한 가운데 워싱턴 DC 연방대법원 건물 앞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져 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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