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력 정책의 가장 큰 병목은 발전 설비가 아니라 송전망이다. 호남의 재생에너지와 서해안의 전력이 연결 통로 부족으로 제약을 받는 사이 수도권 산업단지는 전력 안정성을 우려하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하고 있다. 서해안 HVDC는 이 병목을 해소할 핵심 인프라다. 그러나 국가 재정과 공기업 투자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속도와 효율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렵다.
대안은 민간 자본과 전문성을 구조적으로 활용하는 민관협력(PPP) 모델이다. 민간이 설비를 건설한 뒤 소유권을 국내 유일한 송변전망 운영자인 한국전력공사에 이전하고 이후 전력망 이용률에 연동해 사용료를 수취하는 방식은 한전의 초기 대규모 자본 지출 부담을 완화하면서도 공공의 소유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절충안이 될 수 있다. 이는 자산은 공공이 보유하되 민간이 투자·건설 단계의 자본과 효율성을 제공하는 구조다. 동시에 이용 실적에 기반 한 수익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과도한 고정 비용 전가를 방지하고 공공성과 시장 규율을 함께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구조는 엄격한 제도 설계를 전제로 한다. 이용률 산정 방식, 비용 인정 기준, 성과 미달 시 페널티 부과 등 명확한 규율을 병행해야 공공성 훼손 우려를 차단할 수 있다. 핵심은 위험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되 전력망 운영에 대한 공공 통제력은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에 국민참여펀드를 결합한다면 정책적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송전망 확충의 가장 큰 걸림돌인 사회적 수용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과 국민이 투자자로 참여해 성과를 공유하는 구조는 송전망을 일방적 부담이 아닌 공동 자산으로 인식하게 한다. 영국의 해상송전사업자(OFTO) 제도나 호주의 마리너스 링크 사례에서 보듯 해외에서도 규제 기반 수익 구조와 민간 자본을 결합해 대규모 전력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구축해 왔다. 방식은 다르지만 제도 설계를 통해 장기적 재무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징성이다. 서해안 HVDC가 향후 국민참여펀드의 주요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다면 이는 국가 핵심 인프라를 국민과 함께 구축하고 그 성과를 공유하겠다는 명확한 정책적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금융 상품의 도입을 넘어 대한민국 미래 경쟁력에 대한 공동 투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최근 통과된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토대로 이러한 민관협력과 국민 참여 구조를 구체화할 실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전 단독 추진이라는 기존의 틀을 넘어 재정 부담은 분산하고 사업 속도는 높이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서해안 HVDC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성공 모델을 안착시킨다면 AI 데이터센터 연계 전력망과 국가 핵심 송전망을 잇는 ‘에너지 고속도로’로의 확장도 가능하다.
산업의 혈맥이 막히면 경제도 멈춘다. 지금은 위기를 진단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구조를 바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