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품은 비디오 게임, 오류 속출

해외

이데일리,

2026년 2월 26일, 오후 07:02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비디오 게임 업계가 인공지능(AI) 기술 도입을 놓고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개발비 절감을 위해 AI를 적극 도입하려는 개발사와, AI가 게임의 예술성을 훼손한다고 반발하는 게이머들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25일(현지시간) 2000억 달러(약 285조원) 규모의 게임 산업이 AI 통합 방식을 놓고 분열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아크 레이더스 게임 화면 (사진=엠바크 스튜디오)
◇‘아크 레이더스’ 사태가 불씨

지난해 출시 3개월 만에 1200만 장을 팔아치우며 PC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의 유료 게임 1위를 차지한 흥행작 ‘아크 레이더스’가 AI 논쟁의 진원지가 됐다. 게임 내 로봇처럼 들리는 자동 생성 음성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거센 비판을 받은 것이다.

개발사 엠바크 스튜디오의 패트릭 소데를룬드 최고경영자(CEO)는 “몰입형 플레이에 필수적이지 않은 부분에만 AI를 활용했고, 전문 성우와 병행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업계의 치솟는 개발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를 활용한 것”이라며 “우리는 게임 산업에서 무언가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보태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게이머들은 이같은 메시지에 공감하지 못 하고 있다.

◇AI 오류 속출에 게이머 불만 폭발

게이머들의 반발은 잇단 AI 오류 논란으로 더 커졌다. 일렉트로닉 아츠(EA)의 ‘배틀필드 6’와 마이크로소프트(MS) 산하 액티비전의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7’은 주제와 동떨어지거나 조악하게 생성된 그래픽으로 게이머들의 분노를 샀다. 손가락이 여섯 개인 좀비 산타, 이중 총열 소총 등 눈에 띄는 오류들이 속출했다. 한 게이머는 “단 한 명도 이걸 고쳐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이라는 댓글로 분노를 표출했다.

블룸버그가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 내 4700만 회원 규모의 게임 커뮤니티를 분석한 결과, AI 관련 게시물 중 가장 많은 반응을 얻은 것은 한결같이 AI 비판 콘텐츠였다. 스팀은 AI 생성 콘텐츠가 포함된 게임에 별도 표시를 추가했다. 구매 전 소비자가 게임의 AI 사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AI 데이터센터용 그래픽 칩 수요 급증으로 지난 1년간 메모리 가격은 3배 뛰었다. 엔비디아 최고 사양 그래픽 카드는 리셀(재판매) 시장에서 약 4000달러(약 568만원)까지 치솟는 등 게이밍 PC 비용 급등도 게이머들의 AI 반감을 키우고 있다.

콜오브듀티(Call of Duty) 게임 속 좀비 산타 모습. 손가락이 여섯 개다. (사진=레딧 게임 커뮤니티)
◇개발자 등 업계 내 우려 목소리도

업계 안팎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리서치 기관 옴디아가 지난해 개발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47%가 생성형 AI 사용이 게임 품질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답했다. 전년보다 부정적 시각이 더 짙어진 결과다.

킬존 시리즈 음악을 30년간 담당한 작곡가 요리스 드 만은 “중간 관리자와 임원들이 이 기술에 혹해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떠드는 것보다 훨씬 덜 유용하다”고 꼬집었다. 도쿄대 미야케 요이치로 교수는 “현재 AI 결과물은 100점 만점에 60~70점 수준인데, 전문 창작자들은 95~96점 수준에서 경쟁한다”고 평가했다.

◇게임업계 일자리는 이미 사라지는 중

우려가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형 게임 개발업체 유비소프트는 지난달 전면 구조조정을 발표해 당일 주가가 약 40% 폭락했다. 우리나라 게임사 크래프톤(259960)은 AI 우선 전략에 집중하기 위해 지난해 채용을 동결했다. 소니 그룹은 지난주 5년 전 인수한 게임 개발사 블루포인트 게임즈의 문을 닫고 운영을 종료했다.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 매그디 다르위시는 “나는 이미 AI에 잠식당하고 있는 분야에 있다”고 토로했다. 새로운 AI 이미지 생성 제품들이 출시된 후 프리랜서 단가를 대폭 낮출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AI를 전문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도태될 위험이 있는 시점에 이르고 있다”며 AI의 보편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적대적 논쟁 탓에 필요한 대화는 실종”

게이머들의 반발이 커지자 주요 기업들은 잇따라 ‘인간 창의성 수호’ 선언에 나서고 있다. 인기 게임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제작사 캡콤은 “생성형 AI는 창작 영역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MS의 새 게이밍·엑스박스 CEO 아샤 샤마는 “영혼 없는 AI 쓰레기로 우리 생태계를 범람시키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다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AI가 궁극적으로 게임 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다만 그 시기와 방식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들이 서두르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다르위시는 “AI에 대한 논쟁이 너무 적대적으로 흘러버린 탓에, 정작 필요한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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