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무구의 시대 끝났다" 이란 전쟁 충격, 관세 위기와 달라

해외

이데일리,

2026년 3월 16일, 오전 10:00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촉발된 현재의 경제·금융 충격이 지난해 관세 위기와 본질적으로 다르며 더 깊고 오래 지속되는 상처를 남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앤디 홀데인 전 영란은행(BOE) 수석이코노미스트는 1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올해의 ‘충격과 전쟁’은 지난해의 ‘충격과 경외’보다 훨씬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번 충돌의 경제적 진원지는 에너지다.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로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약 5분의 1, 하루 2000만 배럴에 육박하는 물량이 차단됐다. 홀데인은 이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글로벌 석유시장 충격”이라고 규정했다. 유가는 극심한 장중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으며, 전례 없는 규모의 전략비축유 방출도 이어지고 있다.

◇2025년과 무엇이 다른가

일부 시장 참여자들은 지난해 관세 위기를 선례로 들어 경제 회복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당시 ‘해방의 날’ 관세 발표 직후 자산 가격 급락, 금값 급등, 경기침체 우려 확산 등 현재와 유사한 충격이 있었지만, 지난해 말 글로벌 주가는 연초 대비 약 20% 올랐고 미국 경제는 오히려 호황을 누렸다. 기술 산업의 성장이 관세 충격을 상쇄한 결과였다.

하지만 홀데인은 이 같은 시나리오가 반복되기 어렵다고 봤다. 결정적 차이는 중앙은행의 대응 여력이다. 2025년에는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는 국면에서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려 충격을 완충할 수 있었다. 지금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그 선택지가 사라졌다. 시장은 유로존과 영국의 금리 인상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으며, 미국의 즉각적인 금리 인하도 기대하지 않는 상황이다.

◇스태그플레이션 압력 사방에서

재정 측면의 압박도 더해졌다. 국방비 증가 등으로 재정 부담이 커지면서 장기물 국채 금리도 상승했다. 수익률 곡선 전반에 걸친 통화 긴축이 글로벌 수요를 압박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위험 회피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인공지능(AI)·암호화폐 관련주와 사모 크레딧·레버리지론 시장에서 인수 기준과 자산 평가의 균열이 드러나고 있다. 홀데인은 “이 시장들에서 순진무구의 시대는 결정적으로 끝났다”고 진단했다.

걸프 국가들의 경제적 위상 변화도 악재다. 안전을 약속하며 인재와 자본을 빨아들이던 이 지역의 안전 피난처 지위가 무너졌다. 걸프 의존도가 높은 한국·중국·인도 등 주요 성장 지역에도 한파가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고 홀데인은 지적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노동시장도 흔들리고 있다. 일자리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많은 가계는 2022년 이후 이미 20%에 달하는 에너지 관련 생계비 인상의 충격 위에 또 다른 대형 충격을 마주하게 됐다.

◇AI도 ‘구원 투수’ 되기 어렵다

지난해 경기를 떠받쳤던 기술 산업이 이번에는 그 역할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AI는 지금껏 발명된 기술 중 에너지 소비가 가장 많은 기술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과 불확실성이 AI 기술의 확산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홀데인은 “지난해의 기술 파도와 관세 파도는 서로를 중화하고 진정시켰지만, 올해의 파도들은 서로를 증폭하고 격화시키고 있다”며 “이는 경제적·금융적·재정적·정치적으로 안정이 아닌 불안정을 의미한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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