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美 없는' 독자 방위체제 구축 나선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4월 15일, 오후 09:30

[이데일리 임유경 기자]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 가능성에 대비해 유럽 국가들이 대응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간 유럽 독자 방위 노선에 소극적이었던 독일이 입장을 선회하면서 ‘유럽 주도의 방위 체제 구축’ 논의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일명 ‘유럽 나토(European NATO)’ 구상이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계획은 나토를 대체하기보다는 기존 동맹의 틀을 유지한 채 유럽의 지휘·통제권과 작전 수행 비중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이 유럽에서 병력을 철수하거나 방어 지원을 거부하더라도 러시아에 대한 군사 억지력과 작전 연속성, 핵 억지 신뢰성을 유지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구상은 지난해부터 나토 내외에서 비공식 접촉과 만찬 회동을 통해 추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 장악 의지를 시사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이란 전쟁 발발 후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 요청을 유럽이 거부하고 대서양 동맹의 균열이 심화하면서 논의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유럽 동맹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나토 탈퇴와 군사 자산 재배치 가능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계획에 관여하고 있는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유럽으로 안보 부담이 이동하는 흐름은 이미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며 “미국이 갑작스럽게 철수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유럽 나토’ 추진이 구체화한 배경에는 독일의 입장 변화가 있다고 WSJ은 전했다. 그동안 독일은 유럽의 방위 주권 강화를 요구하는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 반대해 왔다. 미국이 역할을 축소할 구실을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이 러시아 편을 드는 모습을 보고 판단을 바꿨다는 분석이다.

미국 없는 유럽 나토 구상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다. 예산 부족과 미국에 오랜기간 의존하면서 핵심 역량이 부족해진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나토의 군사 구조는 물류, 정보, 지휘체계 등 거의 모든 영역이 미국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단기간 내 대체가 쉽지 않다. 핵 억지력 측면에서 미국과 역량 격차가 크다는 점도 주요 우려 사항이다. 이에 미국의 ‘핵우산’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독일과 프랑스는 프랑스의 핵 억지력을 다른 유럽 국가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 같은 흐름 속 최근 유럽 주요국들은 중동 안보 현안을 계기로 미국과는 별개로 군사·안보 전략을 구상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 독일 등은 이란 전쟁 종식 이후를 대비해 호르무즈해협 통행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다국적 협력 계획을 추진하면서 교전 당사국이라는 이유로 미국을 제외됐다. 이를 두고 다시 한번 미국과 유럽의 균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 간 균열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유럽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지정학적 구도가 빠르게 재편되는 양상이다. 중국은 최근 유럽연합(EU)과의 교역, 공급망, 기후 협력 등을 고리로 외교 접촉을 확대하며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유럽 역시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중국과 협력을 병행하는 균형 외교를 추구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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