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패싱' 이스라엘-레바논 평화회담 추진…'반쪽 평화' 우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4월 17일, 오후 05:43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직접 정상 회담을 추진하고 나섰다. 그러나 주요 교전 당사자인 헤즈볼라가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된 채 추진되는 이번 평화 구상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왼쪽부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조제프 아운 레바논 대통령. (사진=AFP)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 소셜을 통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조제프 아운 레바논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고 밝혔다. 양국 정상이 직접 회담을 갖는 것은 수십 년 만이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78년간 사실상 전쟁 상태를 이어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측 모두 평화를 원하며, 빠르게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워싱턴 방문 의향을 밝혔다. 반면 레바논 측은 아운 대통령이 네타냐후와의 전화 통화를 거절했으며 워싱턴 회담 참석 여부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날 회담 추진 발표는 이스라엘이 약 7주간의 헤즈볼라와의 전투 끝에 레바논과 10일간의 임시 휴전에 합의했다고 밝힌 것과 동시에 나왔다.

◇헤즈볼라 배제…과거 반복 우려

문제는 실질적 교전 주체인 헤즈볼라가 협상 밖에 있다는 점이다. WSJ은 헤즈볼라가 빠진 합의는 “불안한 기반 위에 놓인다”고 평가했다.

역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1983년 체결됐던 이스라엘-레바논 평화 협정은 헤즈볼라 등의 반발로 무너졌다. 1993년 미국 주도의 평화 협상도 시리아의 반대와 헤즈볼라 안보 보장 불가 문제로 결렬됐다. 가장 최근인 2024년 11월 합의도 헤즈볼라 무장 해제와 이스라엘군 철수라는 목표를 모두 달성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헤즈볼라는 이번 휴전에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전역에 걸친 휴전이어야 하며, 이스라엘에 국내 자유 이동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우리 땅에 대한 이스라엘 점령은 레바논과 국민에게 저항할 권리를 부여한다”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레바논 남부에 약 10킬로미터 폭의 완충지대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레바논 정부, 의지는 있지만 집행력 없어”

레바논 정부는 헤즈볼라 군사 활동 금지령을 내리고 이란 대사를 기피 인물로 선언하는 등 전례 없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취약한 군사력과 부실한 경제, 1975~1990년 내전과 같은 갈등 재발에 대한 두려움 탓에 집행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헤즈볼라는 금지령 이후에도 로켓 발사와 무기 이동을 계속했고, 이란 대사는 추방 명령을 거부했다.

이스라엘 안보 관리들은 헤즈볼라가 이번 전쟁에서 발사한 로켓 8000발 중 절반 가까이가 레바논 군이 “비무장화됐다”고 밝혔던 리타니강 이남 지역에서 발사됐다며 레바논 군의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했다.

이스라엘 전 국가안보 관리 아브너 골로브는 “헤즈볼라 해체의 경로는 이스라엘 군사력이나 레바논 내전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베이루트 소재 정책 연구소 센추리 인터내셔널의 연구원 샘 헬러는 “이 회담이 현재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며 “레바논의 내부 안정과 결속에 매우 현실적인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10일간의 휴전이 발효된 이후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접경 지역에서 바라본 레바논에서 폭발이 발생한 뒤 연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로이터)
◇이란, 레바논 휴전을 핵 협상 카드로

이번 레바논 휴전은 이란 핵 협상과도 얽혀 있다. 이란은 레바논 휴전을 핵 프로그램·무기 체계·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대(對)미국 협상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왔다. 미국은 레바논 휴전이 이란 협상과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란이 레바논 전선을 대미 협상의 레버리지로 활용하고 있다는 우려는 지속된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지난주 레바논의 100곳을 동시에 공격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이란 휴전 협상이 무너질 것을 우려해 공격 수위를 낮추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텔아비브 소재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 선임 연구원 오퍼 구테르만은 “이는 이란이 원하면 언제든지 레바논 전선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 북부 ‘분노’…“워싱턴서 서명, 대가는 여기서”

휴전 소식은 이스라엘 북부에서 강한 반발을 불렀다. INSS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란 상황과 무관하게 레바논 전쟁 지속을 지지하는 이스라엘인이 다수였다.

이스라엘 북부 마테 아셰르 지역의회 의장 모셰 다비도비치는 “합의는 워싱턴에서 넥타이를 맨 채 서명하지만, 그 대가는 이곳에서 피와 무너진 집, 해체된 공동체로 치른다”고 비판했다.

현재까지 레바논에서는 2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00만명 이상이 피난했다. 이스라엘도 민간인 2명과 군인 최소 12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 정치권 일각에서는 경제 협력과 관광을 포함한 전면적 평화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네타냐후 총리는 “레바논과 역사적인 평화 협정을 맺을 기회”라고 평가했다. 다만 과거의 실패한 합의들이 보여주듯, 헤즈볼라라는 변수가 해소되지 않는 한 이번 평화 구상도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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