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한 정비사업장의 아파트 건설 현장 모습(사진=연합뉴스)
갈등의 핵심 쟁점은 계약 체결 당시 포함된 ‘물가상승 배제특약’이다. 해당 조항은 공사 기간 중 자재비나 인건비가 상승하더라도 발주처가 추가 공사비를 지급하지 않도록 사전에 정한 계약 조건을 말한다.
2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자양1재정비촉진구역 재개발 시공을 발주한 KT와 약 1000억원 규모의 추가 공사비를 두고 1년 넘게 갈등을 이어오다 최근 법적 공방 대신 물밑 협상을 통해 합의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건설 측은 “구체적인 협의 금액은 밝힐 수 없지만, 결국 법적 소송까지 가지 않고 적정수준의 증액으로 합의를 봤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희망퇴직을 통해 재무개선에 나선 롯데건설이 공사비 일부를 조정하면서 조기 합의에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롯데건설의 경우 가까스로 협상을 마무리했지만, KT는 쌍용건설과 한신공영과의 공사비 갈등이 격화되며 현재 법적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쌍용건설은 2020년 KT 신사옥 건립 공사를 967억원에 수주했지만 이후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171억원의 손실을 보게 됐다. 이에 쌍용건설은 2024년 공사비 증액으로 이를 보존해달라고 KT에 요구했지만 KT는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이유로 공사비를 추가로 지급할 의무가 없다면서 채무부존재 소송으로 대응했다. 건설사가 주장하는 추가 공사비를 지급할 의무가 없음을 법원으로부터 확인받고자 한 것이다. 쌍용건설도 이에 맞서 즉각 공사대금을 청구하는 반소를 제기했다.
같은 해인 2024년 KT의 자회사인 KT에스테이트는 140억원의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는 한신공영을 상대로도도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한신공영이 반소를 제기하면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KT에스테이트가 한신공영에 발주한 부산 초량 오피스텔 개발사업은 당초 520억원에 계약을 맺었다.
비슷한 이유로 KT와 갈등 중인 현대건설은 소송은 진행하지 않고 있다. 회사 측은 물가상승에 따른 공사비 증액이 필요하다면서도 “타 시공사의 소송 결과를 지켜본 뒤 대응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대건설은 KT로부터 광화문 웨스트(WEST) 사옥 리모델링 공사의 시공을 맡아 1800억원에 공사계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착공에 돌입했다. 하지만 물가 상승으로 100억원 이상의 증액이 필요했지만 현재까지 합의를 보지 못하고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현대건설은 최근 개별 정비사업장에는 공사비 인상 필요성을 잇따라 통보하며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원자잿값과 인건비 상승을 반영한 공사비 증액 요구 공문을 마천4구역, 대조1구역, 등촌1구역 정비사업장에 잇따라 발송하면서 협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비사업장별로는 공사비 현실화를 요구하면서도 대형 분쟁에서는 법적 판단을 지켜보는 ‘투트랙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건설사별 대응 전략은 상이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건설 분쟁에서 가장 크게 쟁점이 되는 부분은 ‘물가상승 배제특약’이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사실상 쌍용건설과 KT 간 소송 결과가 향후 민간 건설계약의 기준을 바꿀 수 있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공사들은 이 조항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과도한 부담을 떠넘긴 ‘불공정 계약’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최근과 같은 글로벌 공급망 충격이나 전쟁 등 예외적 상황까지 시공사에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발주처 측은 계약 당시 일정 수준의 물가 상승을 반영해 계약금액을 산정한 만큼 추가 증액 요구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법적 판단은 엇갈린다. 건설산업기본법은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은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취지를 담고 있지만, 물가상승 배제특약의 유효성은 개별 계약 조건과 협상 과정에 따라 다르게 판단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정책과 관계자는 “민간 건설공사의 경우 표준도급계약서를 통해 불가항력적 사유 발생 시 공기 연장이나 계약금액 조정이 가능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면서도 “물가상승 배제특약은 판례가 일률적이지 않아 개별 계약별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에는 전쟁 등 예외적 상황을 불가항력으로 인정하는 유권 해석도 나오면서 공공 부문에서는 계약 조정 여지가 확대되는 분위기”라며 “민간 영역에서도 분쟁 조정이나 협의를 통해 해결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민간은 개별 계약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