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유조선, 62일만에 호르무즈 첫 탈출…"통행료도 안냈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4월 29일, 오전 08:04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이란 전쟁 이후 페르시아만에서 약 2개월간 발이 묶여 있던 일본 유조선이 통행료를 내지 않고 호르무즈 해협을 탈출했다. 일본 정부는 “(이란과의) 협상이 성과를 거뒀다”며 고무됐다. 한국을 비롯해 아직 호르무즈 해협에 자국 선박이 갇혀 있는 국가들과 봉쇄 정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다.

(사진=AFP)
29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유사 이데미쓰코산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이데미쓰마루’가 28일(현지시간) 오전 7시경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와 오만만 공해상으로 진입했다. 무려 62일 만의 ‘탈출’이다.

선박은 이란이 오만만 진입 항로로 지정한 라라크섬 남측을 통과했으며, 같은 날 오후 7시 기준 오만 수도 무스카트 북방 공해를 따라 인도양 방향으로 항행했다.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정보상 목적지는 일본 나고야항으로 표시됐다. 흘수(배가 물에 잠긴 깊이)가 20m에 달해 약 200만배럴의 원유를 가득 싣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데미쓰마루는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공격하기 사흘 전인 지난 2월 25일 페르시아만에 진입한 뒤 발이 묶였었다. 3월 초 사우디아라비아 담만 앞바다에서 원유를 적재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면서 출항길이 막혔다. 이란의 외무장관 아바스 아라그치가 해협 개방을 선언한 지난 17일 페르시아만 중앙 해역까지 이동했으나, 직후 이란이 ‘재봉쇄’를 선언하면서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양측의 군사충돌 이후 페르시아만을 탈출한 일본 정유사 소유 선박으로는 처음이어서 일본 정부는 한껏 고무됐다. 일본 정부는 “정부 차원의 협상이 거둔 성과”라며 이데미쓰마루가 통행료도 내지 않고 해협을 빠져나왔다고 강조했다. 선박 소유주인 이데미쓰코산은 자사 유조선 운항 상황과 관련해 “안전상의 이유로 답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란 국영 TV도 같은 날 이데미쓰마루가 이란 당국과의 조율을 거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고 보도했다. 주일 이란대사관은 이데미쓰코산이 1953년 영국의 봉쇄를 뚫고 이란산 석유를 비밀리에 운반했던 ‘닛쇼마루 사건’을 거론하며 “이 유산은 지금도 큰 의의를 지닌다”고 엑스(X·옛 트위터) 공식 계정에 올렸다.

유럽 조사기관 케플러의 도리가타 유이 애널리스트는 “이번 항행은 현재의 봉쇄 국면에서 일본 정유 대기업이 100% 소유한 VLCC가 처음 해협을 통과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며 “일본 선주들은 그동안 역내 안보 리스크에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해왔다”고 평가했다.

한편 같은 날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국영석유공사(ADNOC)가 소유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도 인도양을 항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선박은 3월 말 페르시아만에 갇혀 있었으며 목적지는 중국으로 추정된다. LNG 적재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것은 처음이다.

페르시아만에는 여전히 수많은 국적의 선박들이 묶여 있으며 ‘탈출’ 여부 역시 불투명하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허가받은 선박만 지정 항로로 통항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통행료 징수도 제도화하려 하고 있다.

이란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국영 TV에서 “전쟁 종결 후 상선의 원활한 항행 허용이 의제가 될 것이지만, 이란의 안보가 위협받지 않는다는 것이 조건”이라고 말했다. 한국 선박도 26척이 페르시아만에 묶여 있어 정부 차원의 개별 협상 카드가 본격 거론될지 주목된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