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없이 버크셔 첫 주총…"저질 기회엔 투자 없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5월 03일, 오후 01:36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인내심을 가져라.”

그레그 에이블 버크셔 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가 2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연례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전한 메시지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없이 처음 단독으로 주총을 이끈 에이블 CEO는 막대한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비판을 정면으로 받아치며 “저질 기회에 자본을 서둘러 배분할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레그 에이블(오른쪽) 버크셔 해서웨이 CEO (사진=AFP)
에이블은 이날 현재 버크셔가 보유한 3970억 달러(약 586조원)의 현금과 미국 단기 국채 포트폴리오가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힘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혹은 그 시점이 2년 뒤일지 3년 뒤일지 알 수 없다”면서도 “시장에는 반드시 혼란이 찾아오고, 그때 우리는 과감히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합기업 해체 없다”…경영 철학 천명

에이블은 버크셔의 복합기업 구조 해체 여부를 묻는 주주 질문에 “절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는 복합기업이지만 효율적인 복합기업”이라는 것이 그의 논리다. 버크셔는 보험·철도·에너지·유통 등 다양한 업종의 자회사를 거느린 복합기업(conglomerate)이다. 그는 다만 실적이 부진하거나 평판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사업 부문은 매각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또 버크셔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경영진과 사업 구조를 갖춘 기업들을 이미 발굴해뒀지만, 높은 밸류에이션 때문에 투자·인수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에이블은 올해 CEO가 되기 전까지 전문적으로 자금을 운용한 경험이 없었음에도, 이날 주주들에게 투자 철학의 일단을 공개한 셈이다.

버핏이 1991년 살로몬 브라더스 스캔들 청문회에서 남긴 발언(“회사의 돈을 잃으면 이해하겠지만, 회사의 명예를 한 줄이라도 잃으면 가차없을 것”)을 영상으로 틀며 버크셔의 사시(社是)라고 선언한 장면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인공지능(AI)에 대해서도 입장을 내놨다. 에이블은 버크셔가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유틸리티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AI 성장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주주 크리스토퍼 데이비스는 “에이블이 버크셔 계열사들이 단순한 기술 구매자가 아니라 기술 구축자의 마인드셋을 갖고 있다고 밝힌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평했다.

◇주주 반응 “완벽한 인수인계”…시장은 냉정

주주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로보티 앤드 코 어드바이저스의 로버트 로보티 대표는 블룸버그에 “원칙 있는 인물에게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인수인계가 이뤄졌다”며 “버크셔가 쌓아온 것들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드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애덤 미드 CEO는 “에이블이 각 사업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버핏 본인도 힘을 보탰다. 그는 “그레그는 내가 한 모든 일을 그 이상으로 해내고 있다”며 “모든 면에서 나보다 더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아이폰 제조사 애플을 사례로 들며, 스티브 잡스 사후 팀 쿡이 성공적으로 회사를 이끈 것처럼 에이블의 리더십도 검증받을 것임을 시사했다.

반면 시장의 시선은 냉정하다. 버크셔 클래스B 주식은 에이블이 CEO로 지명된 이후 12.4% 하락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대비로는 39%포인트 뒤처지고 있다. 버핏이 주총 기간 중 CNBC와 인터뷰에서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도박 심리에 사로잡힌 적이 없었다”며 “수많은 자산의 가격이 터무니없어 보일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시장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참석자도 줄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약 1만8000석 규모의 오마하 경기장에서 수천석이 빈 채로 주총이 진행됐다. 전날 전시홀에서는 찰리 멍거의 스퀴시맬로 인형과 가이코 마스코트를 촬영하는 주주들의 모습도 여전했지만, 예년보다 줄어든 인파가 역력했다.

◇“시장 혼란 오면 과감히 행동”…다음 변수는 ‘타이밍’

이번 주총에서 지난 1분기 실적도 공개됐다. 버크셔의 1분기 영업이익은 113억5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했다. 캘리포니아 산불 피해로 보험 부문이 손실을 기록했던 지난해 같은 기간의 낮은 기저 효과가 반영됐다. 현금 보유액은 3월 말 기준 사상 최대인 3802억 달러를 기록했다. 버크셔는 1분기에 자사주 2억3400만 달러어치를 매입했는데, 이는 2024년 5월 이후 첫 자사주 매입이다.

에이블의 첫 주총은 긍정적인 평가 속에 마무리됐지만,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4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현금을 언제, 어디에 투자하느냐가 향후 버크셔 주가와 에이블의 리더십 평가를 가를 핵심 변수다. 그가 강조한 ‘인내’가 적절한 타이밍에 ‘결단’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시장은 지켜보고 있다.

FILE P버크셔 해서웨이.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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