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회담 앞두고 '이란 석유' 신경전

해외

이데일리,

2026년 5월 03일, 오후 07:26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미국이 미·중 정상회담을 열흘여 앞두고 이란산 석유를 수입하는 중국 기업들을 잇따라 제재하자 중국이 즉각 ‘제재 금지령’으로 맞받았다. 미·이란 종전 협상 교착 국면에서 중국의 역할을 압박하는 동시에 정상회담 담판 카드로 활용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미국 국무부와 재무부는 지난 1일(현지시간) 이란 석유제품 수입 창구로 지목된 중국 기업과 개인을 제재한다고 밝혔다. 제재 대상은 중국 산둥성 소재 칭다오 하이예 석유터미널과 이 회사 대표 리신천, 홍콩·제3국 선적의 ‘그림자 선단’ 선박 운영회사들이다. 국무부에 따르면 하이예는 지난해 수십 차례에 걸쳐 이란산 석유·석유제품 수천만 배럴을 수입했으며, 이를 통해 이란에 수십억 달러가 유입됐다. 이 회사는 싱가포르 연안에서 선박 간 불법 환적(STS) 방식으로 이란산 물량을 들여온 것으로 국무부는 파악했다. 국무부는 이란 석유제품 운송에 관여한 영국·파나마·홍콩 선적 선박 및 선박관리 회사도 함께 제재했다.

재무부는 이와 별도로 연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외환 거래를 중개하는 이란 환전소 3곳과 이들의 위장 기업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해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사실상 차단했다. 재무부는 이 환전소들이 중국으로부터 석유 판매 대금으로 위안화를 받아 이란과 대리세력의 군사자금에 쓰일 수 있는 다른 통화로 환전하는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번 제재는 지난달 24일 미 국무부·재무부가 발표한 중국 정유 대기업 헝리그룹 제재에 이은 후속 조치다. 다롄에 하루 약 40만 배럴의 원유 처리 역량을 갖춘 헝리는 ‘티팟’(teapot·중국 내 개별 정유사)으로는 최대 규모다. 재무부는 아울러 이란과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3억4400만달러(약 5080억원) 상당의 가상화폐도 동결했다. 이란 자금이 유입된 정황이 포착된 중국계 은행 2곳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가능성도 시사하는 등 ‘경제적 분노’ 작전을 가동한 상태다.

제재 대상 기업·개인은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며, 지분 50% 이상을 직·간접 보유한 법인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들과 자금·물품·서비스를 거래하는 기관에도 제재가 부과된다.

연이은 제재는 이란 석유 수출 차단을 통해 전쟁 자금줄을 옥죄는 동시에, 이란산 석유의 약 90%를 수입하는 중국의 에너지 수급도 타격하는 이중 압박 전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14∼15일께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인 가운데, 미국이 교착 상태에 빠진 이란과의 종전 협상에서 중국의 중재 역할을 끌어내기 위한 협상 카드로도 해석된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중국 상무부는 2일 “이들 기업에 대한 미국의 제재 조치에 부당한 역외 적용 상황이 존재함을 확인했다”며 미국의 제재를 승인·집행·준수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령’을 발령했다. 상무부 대변인은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의 제재가 “국제법과 국제 관계의 기본 준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관련국의 법률·조치가 부당하게 역외 적용되는 상황을 긴밀하게 주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금지령은 중국 상무부가 2021년 제정한 ‘외국 법률 및 조치의 부당한 역외 적용 차단 방법’에 근거한 것으로, 외국 법률이 중국의 주권·안보·발전이익을 침해할 경우 해당 조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중 양국의 신경전이 격화되는 가운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란 이슈가 핵심 의제로 부상할지 주목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 지렛대로 제재 압박을 높이는 전략을 택한 만큼, 중국이 미·이란 종전 협상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맡을지가 향후 미·중 관계의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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