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쟁이 뒤집은 글로벌 경제…‘성장’에서 ‘생존’으로

해외

이데일리,

2026년 5월 07일, 오후 07:10

[이데일리 성주원 김윤지 기자] 이란 전쟁은 세계 경제가 추구해온 가치의 순서를 바꿨다. 효율보다 안보가, 성장보다 생존이 우선이 된 시대다. 전쟁의 충격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세계 석유·가스 공급의 약 20%를 책임지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통항은 90% 이상 급감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12개 회원국 전체 산유량은 전쟁 직전 대비 27.5% 감소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세계는 대비에 나섰다. 준비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차이가 선명하게 갈렸다. 개전 시점에 국내 소비 130일 치 원유 12억 배럴을 비축하고 있던 중국은 충격을 흡수했지만 유럽은 역사적 최저 수준인 가스 비축률 30% 상황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아마존은 공급망 불확실성에 대비해 연례 프라임데이를 7월에서 6월로 한 달 앞당겼다. 이렇게 앞당긴 것은 팬데믹으로 공급망이 흔들렸던 2021년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이는 재고를 미리 확보하고 물류 차질에 대비하려는 조치로, 재고 선점이 가격 경쟁보다 우선시된 세계의 단면이다.

에너지 전략도 근본부터 재설계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협상 지렛대’가 됐다는 사실 자체가 걸프국에는 위협으로 다가왔다. 미국 라이스대 베이커연구소는 이라크 바스라에서 오만까지 이어지는 1800㎞의 ‘걸프 슈퍼 익스프레스 송유관’ 건설을 제안했다. 사업비는 550억 달러(약 80조원)에 달하지만 이란이 배럴당 1달러의 통행료를 25년간 부과하면 현재가치로 540억 달러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재정적으로 충분히 추진할 만한 사업이라는 평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이란전 동안 아라비아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1200㎞ 대체 송유관을 최대 가동해 생산은 줄었지만 수익은 오히려 4.3% 증가했다.

장기적으로는 청정에너지 전환이 가속하고 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에너지의 지정학은 수년에 걸쳐 근본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이란전 이후 히트펌프 주문이 2배 이상, 태양광 판매는 80%, 전기차 리스는 85% 각각 증가했다. 유럽연합(EU)도 화석 연료보다 전기에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조세 개편을 예고했다.

우리나라가 직면한 현실도 냉혹하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 중 한국만큼 심하게 타격을 입은 나라는 없다”고 짚었다. 산업 핵심 공급망 41개 품목 중 70%가 중동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나프타 수입의 70% 이상도 중동산이다. 반도체 공급망도 흔들렸다. 카타르산에 64.7%를 의존하던 헬륨 가격은 40% 이상 급등했다. 신원규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나프타 하나가 자동차·반도체·가전 등 전 산업에 영향을 주는 구조다”며 “국가별·루트별·품목별 다변화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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