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 75일 경과…글로벌 원유 공급 10억배럴 증발

해외

이데일리,

2026년 5월 14일, 오후 02:03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과 이란 간 휴전 협상이 사실상 결렬 위기에 몰리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75일을 넘기면서, 글로벌 원유 시장에서 사라진 공급량이 누적 10억배럴을 돌파했다. 글로벌 주요 에너지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번 사태를 “원유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급 차질”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에선 국제유가가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가 쏟아진다.

(사진=AFP)
13일(현지시간) 마켓워치·CNBC·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글로벌 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7월물은 배럴당 107~108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이란의 평화안 역제안을 “쓰레기”라고 일축한 뒤 3거래일 연속 상승해 직전 사흘간 7.5% 급등한 데 따른 흐름이다. 1년 전 배럴당 60달러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약 80% 뛴 수준이다.

문제는 시장에 가격 이상으로 무거운 ‘진짜 변수’가 깔려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에너지업계 수장들은 일제히 “공급 구덩이가 너무 깊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워엘 사완 셸 CEO는 지난 7일 올해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잠긴(locked-in) 원유와 생산되지 못한(unproduced) 원유를 합치면, 우리는 이미 10억배럴 규모의 원유 부족이라는 구덩이를 파놓았다”며 “이 구덩이는 매일 더 깊어지고 있고, 정상화로 돌아가는 길은 매우 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지난 11일 아민 나세르 사우디 아람코 CEO도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오늘 다시 열려도 시장이 재균형을 이루는 데 수개월이 걸린다”며 “재개방이 6월 중순을 넘기면 (가격) 정상화는 2027년까지 미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해협이 막혀 있는 한 매주 약 1억배럴의 원유가 시장에서 사라지고 있다”며 누적 총 손실이 10억배럴을 넘어섰으며, 아람코의 동서 파이프라인과 각국 전략비축유 방출로 일부 상쇄됐음에도 순손실은 8억 8000만배럴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대런 우즈 엑손모빌 CEO 역시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원유와 천연가스 공급에 전례 없는 차질이 빚어졌고 시장은 아직 그 충격의 전부를 보지 못했다”며 “해협이 오늘 열려도 시장이 정상 흐름을 회복하는 데 1~2개월의 시차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IEA가 같은 날 발표한 5월 원유시장 보고서(OMR)도 이들 전망을 뒷받침한다. IEA에 따르면 4월 글로벌 원유 공급은 하루 평균 9510만배럴로 한 달 전보다 180만배럴 줄었으며, 2월 28일 이란 전쟁 발발 이후로는 누적 공급 손실이 하루 1280만배럴에 달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페르시아만 산유국들의 생산 능력이 전쟁 전보다 하루 1440만배럴 줄어든 탓이다. 특히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생산량은 1990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IEA는 6월 중 호르무즈 해협이 점진적으로 다시 열린다고 가정해도 글로벌 원유 시장이 10월까지 심각한 공급 부족 상태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고도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IEA에 따르면 글로벌 원유 재고는 3월 1억 2900만배럴, 4월 1억 1700만배럴 각각 감소했다. 하루 평균 400만배럴 꼴이다. 사상 최대 규모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5월 첫째 주 미국 원유 재고는 430만배럴 줄어 시장 예상치의 두 배에 달했다. 나세르 CEO는 “휘발유와 항공유 등 정제유 재고가 여름 운전·여행 성수기 전에 임계 수준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장 반응은 다소 차분하다. 셸·아람코·엑손모빌 CEO들의 경고가 일제히 쏟아졌음에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최근 한 달간은 100달러 안팎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1년 전 대비로는 약 80% 뛴 상태다.

마켓워치는 “재고가 역사적 평균 아래로 떨어지면 시장의 충격 흡수 장치 자체가 사라지고, 추가 생산 차질이나 기상 이변, 지정학적 돌발 변수에 가격이 훨씬 빠르고 강하게 반응하게 된다”며 “투자자들이 충분히 우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이란 문제보다 무역 협상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을 변수로 꼽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으로부터 이란 압박과 관련된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미국의 추가 군사 행동 옵션이 다시 부상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령관은 CNBC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세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모두 좋지 않다”며 “분쟁에서 손을 떼거나, 대규모 폭격을 재개하거나, 호르무즈를 무력으로 다시 여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현재로선 무력 재개방이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이지만, 막대한 해군 자원과 일부 지상군이 필요하고 주당 10억달러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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