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원년' 시동 거는 일본 방산…한국이 롤모델

해외

이데일리,

2026년 5월 14일, 오후 02:13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수십 년간 굳게 닫혀 있던 일본의 무기 수출 빗장이 열리면서 일본 방산업계가 글로벌 무기 시장 진입을 본격 준비하고 있다.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이란 전쟁 등 복합 분쟁으로 수요가 폭발하는 가운데, 일본이 최적의 타이밍을 만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군의 유도탄 요격 실사격 훈련에서 천궁-Ⅱ 지대공유도탄이 가상의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사진=합참)
◇세계는 무기에 목마르다

13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난달 27일 2025년 전 세계 국방비가 전년보다 늘어난 2조8900억 달러(약 4314조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11년 연속 증가다.

도쿄 지경학연구소(IOG)의 오기 히로히토 선임연구원은 CNBC에 “각국이 방공 미사일·포탄·장갑차를 필사적으로 확보하려 하고 있다”며 이 분야가 일본이 국제 방산 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더해 이란 전쟁까지 불붙으면서 수요는 더 확대될 공산이 크다.

미국의 동맹 의지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점도 기회 요인이다. 전통적인 미국 파트너 국가들이 대안 공급처를 찾는 흐름 속에서 일본 방산은 새로운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교과서

CNBC는 일본이 참고할 수 있는 선례로 K-방산을 명시적으로 거론했다. 한국 방산기업들은 미국산에 필적하는 품질의 무기를 더 저렴하고 빠르게 공급하면서 최근 수년간 수출 시장에서 약진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가 폴란드·루마니아 등 유럽 시장에서,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079550)는 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이라크 등 중동 시장에서 잇달아 대형 계약을 따낸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이 이 궤적을 따라갈 수 있느냐가 핵심 질문이다. 도쿄 국제기독교대학(ICU) 스티븐 나기 교수는 일본 엔지니어링 기술이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하면서, 영국·이탈리아와 함께 개발 중인 차세대 글로벌 전투항공 프로그램(GCAP·글로벌컴뱃에어프로그램) 전투기를 “핵심 자산”으로 꼽았다. 이 전투기는 영국과 이탈리아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일본의 미쓰비시 F-2를 대체할 예정이다.

단기적으로는 레이더 시스템, 초계함, 요격 미사일 같은 해양 감시·방공 분야가 주력이 될 전망이다. 이미 호주가 지난달 미쓰비시중공업이 건조하는 모가미급 기반 범용 호위함 3척 도입 계약을 체결했고, 필리핀·인도네시아·뉴질랜드도 일본 방산 장비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글로벌 군사비 지출 추이. (단위: 10억달러, 자료=SIPRI·CNBC)
◇넘어야 할 산

낙관론만 있는 건 아니다. 나기 교수는 일본 기업들이 국제 마케팅 경험과 가격 경쟁력 양면에서 모두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무기 시장을 즉시 석권하기보다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 사이에서 첨단 기술 틈새를 개척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 수출 제한을 일부 완화했을 때의 성과는 초라했다. 국제전략연구소(IISS) 집계에 따르면 그 이후 완제품 수출은 필리핀에 항공감시레이더 4기를 공급한 것이 전부였고, 이번 호주 계약이 처음으로 의미 있는 수출 성과다.

구조적 문제도 있다. 수십 년간 자위대만을 상대해온 일본 방산업체들은 수출 마케팅 조직도, 단가 절감 유인도, 여유 생산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올해 2월 보고서에서 방산 사업이 낮은 수익성 때문에 민수 사업보다 매력이 떨어진다며, 기업들의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의 2025년 국방비는 9.7% 늘어난 622억 달러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4%에 달해 1958년 이후 최고 비중을 기록했다. 오기 연구원은 수출 허용 자체가 기업들에 평시 대량 생산 유인을 제공해 생산 역량 확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K-방산 뒤 이을까

나기 교수는 미쓰비시중공업을 업계의 ‘닻’으로 지목하면서, 가와사키중공업·IHI·미쓰비시전기도 국제 조달 물량을 소화할 규모를 갖췄다고 평가했다.

자산운용사 위즈덤트리는 지난해 11월 보고서에서 “일본이 본격적인 수출 시장 진입을 준비 중”이라며 “아시아 방산은 향후 20년 방산 투자의 프론티어”라고 규정했다.

관건은 속도다. K-방산이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수요 폭발기에 빠르게 생산·공급 역량을 키워 시장을 선점한 것처럼, 일본도 이란 전쟁과 미국 동맹 이탈 우려라는 창이 닫히기 전에 공급 기반을 얼마나 신속히 갖추느냐가 수출 대국으로의 전환을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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