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진 맥스캐피탈 CEO
경쟁의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같은 업종 안에서 점유율을 다퉜다면 이제는 다른 업종의 기능을 흡수하며 경쟁의 좌표 자체를 옮긴다. 샤오미는 더는 자신들을 스마트폰 회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람·자동차·집을 잇는 통합 생태계’(스마트폰(人), 자동차(車), 스마트홈(家)을 하나의 운영체제(OS)로 묶어 끊김 없이 연결하는 커넥티드 생태계)를 자처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경쟁 상대를 삼성·애플에서 테슬라·구글·가전 메이커로까지 넓혔다. 우리가 여전히 ‘전자회사’, ‘자동차회사’라는 이름표로 기업을 규정하는 동안 세계 시장의 경쟁 지도는 이미 다시 그려지고 있다.
협력의 문법도 함께 바뀌고 있다. 바깥에서는 미국의 관세와 기술 제재가 거세지고 안에서는 중국 정부가 산업 자립과 공급망 결속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중국 기업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더 단단히 뭉치고 있다. 경쟁사와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공급망과 표준 영역에서는 손을 잡는 합종연횡이 일상화했다. 비야디가 DJI와 손잡고 차량 탑재 드론 시스템을 선보인 것처럼 과거라면 만나지 않았을 업종 간 연합도 늘고 있다. 같은 회사가 어떤 사업에서는 경쟁자고 다른 사업에서는 동맹인 시대, 산업 지도는 단선이 아니라 그물망으로 다시 재편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그물망 위 어디에 서 있는가. 한국에서도 빅블러는 이미 시작됐다. 현대차는 자동차를 넘어 로봇과 수소, 미래 모빌리티로 확장하고 있고 삼성전자 역시 전자를 넘어 AI·헬스케어·스마트홈 생태계를 넓혀간다. 한국이 오랜 시간 쌓아온 제조 완성도와 글로벌 브랜드 신뢰는 분명한 자산이다. 그러나 한국 역시 미·중 압력 속에서 산업 재편을 요구받고 있다. 다만 중국식 빅블러가 국가 주도의 강한 드라이브 위에서 움직인다면 한국은 시장과 기업의 자율적 전환 역량에 더 크게 기댈 수밖에 없다. 산업 간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과 전환이 자유로워야 하고 새로운 시도의 실패를 과도하게 낙인찍지 않는 분위기도 절실하다.
네거티브 규제냐 포지티브 규제냐를 둘러싼 익숙한 규제 논쟁만으로는 지금의 융합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산업을 나누는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빅블러 시대의 승부는 누가 더 큰 회사인가가 아니라 누가 더 빨리 다른 회사로 진화하느냐에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