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스스로 작동하는 컴퓨터'에 베팅…키보드·마우스 없는 미래 온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6월 04일, 오전 11:46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세계 최대 기술기업들이 ‘스스로 작동하는 컴퓨터’에 막대한 베팅을 하고 있다. 키보드와 마우스로 일일이 조작하는 대신, 말로 시키면 인공지능(AI)이 사용자를 대신해 복잡한 작업을 알아서 끝내는 컴퓨팅 환경을 겨냥하면서다.

3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6의 엔비디아 제품 쇼케이스에서 엔비디아 RTX 스파크 칩과 노트북이 전시돼 있다. (사진=AFP)
◇칩·노트북·에이전트 줄줄이…빅테크 ‘AI PC’ 격돌

3일(현지시간) CNN방송에 따르면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은 최근 이런 AI 에이전트를 위한 새 칩과 노트북, 소프트웨어를 잇따라 내놨다. 상당수가 이번 주 공개됐다. 기술조사업체 테크날리시스의 밥 오도넬 창업자 겸 수석 분석가는 “결국 목표는 컴퓨터에 원하는 바를 말하기만 하면 컴퓨터가 알아서 해주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와 MS는 이를 위해 윈도 운영체제(OS)를 손보고 있다. 엔비디아가 지난 1일 공개한 윈도 노트북용 새 칩 ‘RTX 스파크’는 인터넷 클라우드에 연결하지 않고도 노트북 안에서 AI 에이전트를 직접 돌릴 수 있게 해준다. 고성능 그래픽 기술에 메모리를 대폭 늘려 AI 처리 능력을 끌어올렸다. 델과 HP, 레노버가 올가을 이 칩을 넣은 컴퓨터를 내놓는다.

구글이 선보인 안드로이드 기반 AI 노트북 ‘구글북’(Googlebook)에는 ‘매직 포인터’라는 기능이 들어갔다. 구글 딥마인드와 함께 만든 이 기능은 화면 속 특정 항목에 마우스 커서를 갖다 대면 AI 비서 제미나이가 상황을 파악해 할 일을 제안한다. 예컨대 이메일에 적힌 날짜에 커서를 올리면 그 일정에 맞춰 회의를 잡아주는 식이다.

기술기업들이 이런 디지털 비서를 만들려 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장바구니에 물건 담기, 온라인 주문 추적, 여행 계획 짜기처럼 자잘한 일을 대신 해줄 비서를 수년간 개발해왔다. 다만 과거 비서들은 택시를 부르거나 주문을 넣는 단순 작업은 했어도, 여러 단계를 거치는 일을 처리하거나 사용자의 취향을 헤아리는 데는 서툴렀다. 이런 한계는 2022년 말 챗GPT가 등장하고 거대언어모델(LLM)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올해 개발자들 사이에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AI 어시스턴트 ‘오픈클로’(OpenClaw)가 대표적이다. 이 에이전트는 사용자가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요청을 끝낸다. 개발자들은 집에 둔 별도 컴퓨터에서 오픈클로에 자료조사 같은 일을 맡겨두고 다른 일을 하다가, 왓츠앱이나 텔레그램 메시지로 진행 상황을 확인한다고 한다. 블룸버그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일부 기술기업 직원은 아예 자판을 두드리는 대신 AI 에이전트에 말로 명령하기 시작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데이비드 나란조 부국장은 “이제 더 많은 사람이 챗GPT나 제미나이, 앤스로픽을 쓰는 데 익숙해지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신제품 경쟁도 뜨겁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이번 주 신형 칩을 단 노트북으로 AI 에이전트가 3D 모델링 앱 여러 개를 오가며 집을 설계하는 모습을 직접 선보였다. MS는 전날 오픈클로 기술을 바탕으로 한 ‘MS 365’용 새 에이전트 ‘스카우트’(Scout)를 내놨다. 스카우트는 클라우드와 사용자 컴퓨터, 웹에 흩어진 자료를 넘나들며 일하고, 아웃룩·팀즈 같은 앱에서 이메일과 업무 채팅을 늘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직 필수품 아니다”…높은 가격·신뢰가 대중화 관건

다만 전문가들은 보통 사람이 명령 몇 마디로 컴퓨터를 부리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새 노트북 값이 비쌀 가능성이 크다. 앤스로픽이나 오픈AI가 AI 에이전트를 아무리 빠르게 개선해도, 소비자로서는 그걸 따라가려고 값비싼 노트북을 새로 살 이유가 마땅치 않다. 나란조 부국장은 “아직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되지는 못했다. 바로 그 점이 엔비디아와 MS 등이 풀어야 할 과제”라고 짚었다.

AI가 개인보다 기업에 더 쓸모가 있다는 점도 변수다.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보내지 않고 기기 안에서 처리하면 보안이 더 튼튼하고, 기업으로서는 비용도 아낄 수 있다. 그만큼 AI 에이전트가 개인용보다 기업용으로 먼저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이 중요한 일을 믿고 맡길 만큼 AI를 신뢰하느냐도 관건이다. 가령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표를 AI 에이전트에 맡겼는데, 예산을 잘못 알아듣고 지나치게 비싼 좌석을 사버린다면 곤란해진다.

시장조사업체 IDC의 지테시 우브라니 리서치 매니저는 “대중화되기 전에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라면서도 “그래도 우리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그렇다’”고 말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