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3년 만에 금리인상…에너지 쇼크에 글로벌 긴축 우려 확산(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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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6년 6월 12일, 오전 04:11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과 인플레이션 재확산 우려를 이유로 약 3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중동 전쟁 이후 주요 중앙은행이 취한 첫 긴축 조치라는 점에서 글로벌 통화정책 기조 변화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사진=로이터)
ECB는 11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예금금리를 연 2.0%에서 2.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고 밝혔다. 시장 예상에 부합하는 결정으로, ECB가 금리를 올린 것은 2023년 9월 이후 처음이다. 이번 결정은 정책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이뤄졌으며 정책금리는 1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특히 ECB는 중동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충격에 대응해 금리를 인상한 첫 주요 7개국(G7) 중앙은행이 됐다. 전쟁이 4개월째 이어지면서 중동 에너지 인프라 훼손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고 있고, 이에 따른 유가 및 천연가스 가격 상승이 유럽 경제 전반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중동 분쟁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면서 상당한 에너지 충격을 초래하고 있다”며 “금리 인상 필요성은 매우 명백했다”고 밝혔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에너지 부문을 넘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기 시작하고 있다”며 “이번 결정은 보험성 조치나 선제적 대응이 아니라 현재 상황에서 필요한 통화정책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ECB는 이날 공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인플레이션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ECB는 올해 유로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평균 3.0%를 기록한 뒤 2027년에도 2.3%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물가가 당분간 ECB 목표치인 2%를 웃돌 것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유로존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2%로 목표치를 3개월 연속 상회했다.

ECB는 특히 국제유가가 추가로 급등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ECB는 3분기 국제유가가 배럴당 165달러를 넘는 비관적 시나리오에서는 올해 물가상승률이 4.0%, 2027년에는 5.3%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인플레이션 충격이 에너지 부문을 넘어 경제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임금 상승세는 올해 하반기 들어 다소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기업들은 여전히 판매가격 인상을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가격 상승이 근원 인플레이션을 밀어 올리는 신호도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단순한 유가 상승을 넘어 서비스와 상품 가격 전반에 물가 압력이 번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반면 경제 성장 전망은 낮아졌다. ECB는 올해 유로존 성장률을 0.8%, 2027년 성장률을 1.2%로 제시하며 기존 전망보다 소폭 하향 조정했다. 물가는 오르는데 경제 성장세는 둔화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ECB가 본격적으로 우려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ECB는 추가 금리 인상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번 인상이 새로운 긴축 사이클의 시작인지를 묻는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피하며 “회의 때마다 데이터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금융시장은 ECB의 추가 긴축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금리스와프 시장은 ECB가 연말까지 최소 한 차례 더 0.25%포인트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 오는 7월 회의에서 연속 인상이 이뤄질 확률도 약 30% 수준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프린시펄 자산운용의 시마 샤 수석 글로벌 전략가는 “높아진 물가 전망과 제한적인 성장률 하향 조정은 ECB가 인플레이션 위험 대응에 분명한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추가 긴축 가능성을 전망했다. 반면 독일 베렌베르크은행의 홀거 슈미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공급 충격에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는 것은 정책 실수”라며 “유로존 경제에 새로운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ECB의 결정은 다음 주 열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회의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시장은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역시 최근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가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근원물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ECB의 결정은 주요 중앙은행들이 성장 둔화보다 인플레이션 재확산을 더 우려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럽은 미국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 충격을 먼저 받고 있지만, 중동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을 비롯한 다른 중앙은행들도 추가 긴축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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