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넘는 현지 근무를 포함해 현장과 학계를 오가며 중국 연구에 몰두한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前 중국삼성경제연구원장)는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핵심 광물과 소재를 장악한 중국의 공급망 지배력이 이제 무기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중국의 성장은 한국 산업 생태계를 위협하는 수준이 됐다는 게 박 교수의 우려다.
그는 향후 5년 내 한국의 골든타임 과제를 묻자 “반도체 등 분야에서 초격차를 유지하지 못하면 한국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박 교수는 16·17일 열리는 제17회 이데일리 전략포럼 이튿날에 연사로 나서 공급망 재편 시대에 한국의 전략을 제시한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사진=본인 제공)
박 교수는 이제 중국이 한국을 학습 대상이 아닌 전략적 경쟁자이자 공급망 파트너로 보고 있다고 했다. 과거 한국은 중국의 산업화 참고 모델이었지만 이제는 직접 경쟁하는 수평적 구조라는 것이다. 대중국 무역이 적자로 돌아선 흐름은 이 같은 관계 역전을 보여주는 상징적 단면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중국의 산업 고도화와 기술 자립이 빠르게 진행되며 과거 한국이 공급하던 중간재 상당 부분을 중국 기업이 자체 조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성장 배경에는 국가 차원의 전략이 있다. 중국은 제조 강대국과 기술 자급자족을 천명한 ‘중국제조 2025’로 전략 산업에 투자해 왔다. 여기에 거대한 내수가 시험대가 돼 기술 상용화도 빨리 이뤄졌다. 이를 통해 화웨이나 BYD 등 글로벌 기업이 배출됐다는 분석이다. 박 교수는 “미국에서도 중국을 과거 저가 생산기지 정도로 봤다면 지금은 여러 분야에서 직접 경쟁하는 산업 강국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기업출해(企業出海)가 중국 경제의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중국 내부 경쟁이 극심해지며 거대 기업들이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실제 중국의 기업출해로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서 중국 첨단 기업들이 현지 산업 생태계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중국의 이 같은 성장이 한국에 위협이 된다는 점이다. 경쟁 방식을 바꿔놓고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가격과 품질 중심이던 경쟁이 이제는 기술·공급망·지정학이 결합된 복합 경쟁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중국 민간기업의 확장이 과거 공자학원이나 일대일로보다 더 강력한 소프트파워 효과를 가질 수 있다”며 “단순한 이미지 홍보가 아니라 실제 산업화와 일자리, 기술 이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중국의 이 같은 성장 방식이 앞으로 군사력이나 외교뿐 아니라 산업과 공급망 네트워크를 통해 더 확대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14일(현지시간) 정상 회담을 앞두고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장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하고있다. (사진=AFP)
이러한 복합 경쟁 환경에서 박 교수는 과거 한국의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프레임이 한계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이제는 안보와 경제를 분리할 수 없는 만큼 미국과의 기술 동맹을 기반으로 공급망 질서를 새로 짜야 한다는 제언이다. 박 교수는 “한국 첨단산업의 상당수는 미국의 원천기술과 연구 생태계, 장비 시스템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발전해왔다”고 강조했다. 미국과의 기술 결합을 단단히 다지는 동시에 유럽·인도·아세안 등으로 공급망 영토를 넓히는 다변화 전략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 중국 시장에 기회도 있다. 중국 산업이 완제품 중심으로 고도화할수록 이를 뒷받침할 한국의 고성능 반도체·첨단 소재·정밀 장비에 대한 중국 내부 수요가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범용 소비재 중심의 과거 전략을 버리고 고부가가치 기술과 프리미엄 시장 중심의 선별적 진출 전략으로 체질 전환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박 교수는 “한국은 중국의 발빠른 기술 상용화 생태계를 현실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분야에서 협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한국이 중국과의 완전한 디커플링(분리)가 아닌 경쟁과 협력이 함께 존재하는 형태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 교수가 꼽은 한국의 생존 열쇠는 중국이 따라오기 어려운 대체 불가능한 기술력을 만드는 것이다. 기술이 곧 국가 안보이자 공급망 주도권이 된 시대에서 한국이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향후 5년은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한 국가로 남을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골든타임”이라며 “단순한 생산 경쟁이 아니라 기술과 표준 중심의 경쟁으로 리더들이 전략의 방향을 과감히 바꿔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 석사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산은경제연구소장 △중국삼성경제연구원장 △Dentons Lee 법률사무소 상임고문(현)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현) △스탠포드대 객원 연구원(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