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스 전 대사는 21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현재 한미관계에는 일종의 신뢰 적자(trust deficit)가 존재한다”며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캐나다와 유럽, 일본 등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들도 공통으로 느끼고 있는 문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미국의 관세 정책과 비자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에 공감을 표했다. 다만 이를 단순히 한국만의 문제로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스티븐스 전 대사는 “전통적인 동맹국들 사이에서 미국 정책의 예측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신뢰는 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잃기는 훨씬 쉽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의 투자 결정에는 무엇보다 정책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티븐스 전 대사는 “기업들은 몇 개월이 아니라 수십 년을 보고 투자 결정을 내린다”며 “정권이 바뀌면서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투자 환경의 기본 규칙은 예측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기업의 대규모 대미 투자와 관련해 “많은 한국 기업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CHIPS Act) 등 미국 정부가 제시한 규칙을 믿고 투자 결정을 내렸다”며 “기업들은 현재 존재하는 제도와 정책을 바탕으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치적 변화에 따라 정책 우선순위가 조정될 수는 있지만 기업이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을 정도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은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는 한국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기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스티븐스 전 대사는 미국 정부가 앞으로 한국 기업에 더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하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그는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며 “무엇보다 미국 내에는 한국 기업과 한국 투자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연방정부뿐 아니라 주 정부 차원에서 한국 기업들의 역할에 대한 평가가 높다고 설명했다. 스티븐스 전 대사는 “한국 기업이 투자한 지역의 주지사들과 지역사회 지도자들은 한국 기업이 일자리와 투자를 통해 지역경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FTA)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스티븐스 전 대사는 “한미 FTA는 양국 경제관계의 매우 강력한 기반이었다”며 “현재는 그 중요성이 예전만큼 강조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한미 경제협력의 기반이 여전히 견고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의 한미관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깊고 폭넓다”며 “한국계 미국인 사회도 성장했고 한국 기업의 미국 내 존재감도 크게 확대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은 한국이 필요하고 한국 기업이 필요하며 한국의 투자도 필요하다”며 “많은 미국인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 나를 낙관적으로 만드는 이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