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못 쫓아가는 전력계획[생생확대경]

해외

이데일리,

2026년 6월 21일, 오후 07:25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2038년의 한국의 전력 수요를 예측할 수 있을까. 지난해 확정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8년까지의 전력 수요를 전망한다. 어떤 발전소를 짓고 어떤 송전망을 놓을지도 담겨 있다. 국가가 미래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2038년은 아직 12년 뒤다. 12년 전은 2014년이다. 아이폰6가 처음 나왔다. 알파고 쇼크는 아직 오지 않았다. 엔비디아는 지금처럼 세계 증시를 움직이는 기업이 아니었다. 생성형 AI라는 말도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12년 뒤를 계획하고 있다.

최근 뉴욕 맨해튼 모건스탠리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말은 “AI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지만 전력은 선형적으로 증가한다”였다. 처음에는 AI 이야기로 들렸다. 곱씹어보니 전력 이야기였다. 더 정확히는 계획의 이야기였다. AI는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AI는 미래를 예측하는 일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2021년 누가 챗GPT를 예상했을까. 2022년 말 등장한 챗GPT는 불과 2~3년 만에 미국 전역의 데이터센터 건설 붐을 만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구글, 메타는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미국 전력회사들은 갑자기 수십 기의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미래를 바꾸는 속도가 미래를 예측하는 속도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크리스 오르테가 모건스탠리 투자운용 인프라 파트너스 미주 총괄은 “오늘의 AI가 앞으로 가장 형편없는 AI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규모가 아니라 속도다”고 강조했다.

많은 사람이 이 말을 AI 산업 이야기로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AI가 요구하는 전력 수요 증가 속도가 발전소와 송전망 건설 속도를 압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의 전력계획을 꼬집는 말로 들렸다. 원전은 건설에 10년 이상 걸린다. 대규모 송전망도 수년에서 1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주민 동의와 환경영향평가, 각종 인허가 절차까지 거치면 더 길어진다. 전력은 원래 느린 산업이다. 반면 AI는 빠르다. AI 모델은 1년이면 구식이 된다. 데이터센터 수요는 몇 달 만에 바뀐다. 투자 방향도 순식간에 뒤집힌다. AI는 1년 만에 바뀌는데 전력망은 10년이 걸려도 완성되지 않는다. 실제 미국에서는 이미 전력 부족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인 버지니아 북부에서는 전력망 연결이 새로운 병목으로 떠올랐다. 기업들은 전력망 연결을 기다리는 대신 자체 발전소 건설까지 검토하고 있다. 모건스탠리 패널들은 AI 산업의 최대 병목이 반도체에서 전력망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히려 AI 시대일수록 전력 계획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다만 계획의 철학은 달라져야 한다. 과거에는 얼마나 정확하게 미래를 맞히느냐가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얼마나 빠르게 수정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15년 뒤 수요를 맞히는 능력보다 예상 밖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이 더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모건스탠리 포럼에서 들은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문제는 규모가 아니라 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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