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최근 미국에선 연간 물가상승률이 3년 만에 처음으로 임금 상승률을 앞질러 급여를 갉아먹고 있다. 여기에 그동안 저축률을 떠받쳐온 세금 환급금마저 끊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에 따른 환급금이 대부분 지급 완료된 것이다. 환급액은 가구당 지난해보다 약 350달러(약 53만원) 많았다.
세금 환급은 받을 때 잠깐 소득을 늘려주는 일회성 자금이어서, 그 돈이 들어오는 동안에는 저축을 헐어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외부 수혈이 끊기면서 저축률은 더 낮게 찍힐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설명이다.
미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개인소비가 지난 1년 약 2% 성장하며 견조한 흐름을 보였음에도 저축률만 놓고 보면 가계가 현금에 쪼들리는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는 우려와 거리가 먼 설명도 있다. 우선 인구구조다. 현재 미국 내 연금생활자 비중은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노동시장에서 벗어난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사회보장연금 수령자가 지난달 5450만명에 달했다. 전체 인구(약 3억4900만명)의 15.6%로 10명 당 1.6명꼴이다. 이들은 당장의 소득은 적지만 평생 모은 저축을 헐어 지출을 이어간다. 저축률은 끌어내리되 재정적으로는 별 해가 없는 셈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코노미스트들의 연구에 따르면 전형적인 연금생활자는 매년 소득보다 1만5000~2만2000달러(약 2300만~3373만원)를 더 쓴다. 노년층 전반의 이런 ‘디저축’(dissaving·저축을 헐어 쓰는 행위)은 전체 저축률을 5%포인트 남짓 끌어내린다. 지금의 낮은 수치 일부는 젊은 가계의 돈이 떨어진 게 아니라, 노년층이 과거 저축을 헐어 쓰고 높은 자산가치에 힘입어 더 자유롭게 지갑을 여는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가계 대차대조표를 봐도 소비절벽을 우려하긴 어려워 보인다. 저축률은 매달 소득에서 남은 돈을 잴 뿐, 가계가 이미 쥔 현금의 총량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연준 데이터를 보면 현금과 은행 예금, 머니마켓펀드(MMF)를 합친 유동자산은 연간 가처분소득의 약 84%에 이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30년간의 70% 미만과 비교하면 크게 올라선 수치다. 이 완충 장치는 부유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산 기준 하위 절반 가계의 평균 유동성 잔고도 약 1만2800달러(약 1962만원)로 실질 기준 팬데믹 이전 어느 때보다 많다.
실제 소비 지표에도 위축 징후는 없다. 지난달 카드 지출(주유 제외)은 전년 동월 대비 약 5% 늘어 4년 만에 가장 빠른 증가세에 근접했다. 중산층을 대표하는 슈퍼마켓 월마트의 올 1분기 거래 건수는 2024년 이후 가장 빠르게 늘었다.
다만 소비자가 무적이 된 것은 아니다. 증시가 크게 무너지면 노년층마저 지출을 줄일 수 있어서다.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둘러싼 미·이란 잠정 합의에도 유가는 수개월간 높게 유지될 가능성이 크고, 트럼프 행정부의 징벌적 관세를 둘러싼 혼란도 거세질 수 있다. 미국·캐나다·멕시코 무역협정(USMCA)의 운명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소비자는 여전히 많은 것을 견딜 수 있지만, 무엇이든 견딜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