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욱 "미·중 패권 경쟁, 군사·이념서 AI·기술로"…韓, 협력자 돼야(종합)

해외

이데일리,

2026년 6월 23일, 오후 05:33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세계적인 정치사회학자이자 동북아시아 전문가인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가 현 국제질서를 ‘혼돈과 각자도생의 시대’로 규정하며 한국이 미·중 2강 체제 속에서 치밀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패러다임은 수명을 다했다며, 경제안보 분야는 미국과 공조하되 안보 외적 영역에서는 중국과 협력을 병행하는 분야별 투 트랙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23일 세계경제연구원이 ‘글로벌 지경학적 변화와 한국의 미래 전략’을 주제로 개최한 웨비나 포럼에 연사로 나선 신 교수는 현 국제 정세에 대해 “국제규범과 집단안보는 약화되고, 협력과 갈등이 사안별로 반복되는 혼돈과 각자도생의 시대”라며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지 않는 혼란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중 관계에 대해서는 “과거 냉전의 미국·소련 간 갈등이 군사·이념에 집중됐다면, 지금 미국·중국 간 갈등의 핵심은 경제·기술·과학”이라며 “인공지능(AI) 기술과 인재 확보를 둘러싼 양국 간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안미경중’ 패러다임의 종언을 선언하면서도, 관광·소비재·제조업 등 안보 외적 분야에서는 중국과의 협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대만과 관련해 중국이 무력 침공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안 봉쇄 등 군사적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며 한국이 미국·일본에 비해 이 문제를 상대적으로 외면하고 있다고 경각심을 촉구했다.

신 교수는 경제·기술의 안보화에 따른 지경학적 변화가 한국에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의 대중 견제가 오히려 한국 첨단산업에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며 메모리 반도체·피지컬 AI 등 강점 분야에서 미국 제조업 부흥을 지원하는 윈윈 전략을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에 치맥(치킨과 맥주)·삼겹살 먹으러 온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미국 빅테크가 한국 기업을 자신의 생태계로 끌어들이려 한다는 점을 냉철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K드라마가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적 인기를 얻었지만 동시에 플랫폼 종속이라는 위기를 맞은 것과 같은 이치라는 설명이다.

중동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이란 종전 양해각서(MOU) 이후 전개될 재건 사업에 한국이 선제적으로 진입하는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3000억 달러(약 460조원) 상당의 이란 재건 기금 조성 시 한국도 일정 부분 기여할 여지가 있는 만큼 주도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관세·방위비 분담금 등 표면은 양호해 보이지만 수면 아래 크고 작은 갈등이 쌓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말 레임덕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며 세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비핵화를 어떻게 이룰 것이냐’가 아니라 ‘핵을 가진 북한과 어떻게 평화 공존할 것이냐’로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복합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신 교수는 한·일·유럽연합(EU) 간 새로운 다자 협력체 구상을 제시했다. 세 주체 모두 트럼프 시대의 도전과 북핵·러시아 위협에 직면한 만큼, 기존 동맹을 대체하지 않는 선에서 공통 과제를 함께 논의할 협력 기반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끝으로 신 교수는 ‘코리아 피크’를 경계하며 “AI 거품이 꺼질 때 한국이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거 유럽·일본의 쇠퇴 과정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며 지속가능성을 위한 인재 육성과 유치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이민은 불가피하다고 진단하며 “출산율을 높이는 데만 집중할 게 아니라 인적 자원 확보 전략을 더 넓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유럽이 겪은 이민 사회 갈등을 그대로 답습할 수 있다며 국가 차원의 선제적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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