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도 유가도 아닌 AI가 물가 올린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6월 25일, 오후 01:43

[이데일리 김겨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과 유가 상승 압력이 완화되는 가운데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가 새로운 물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에 필요한 반도체, 전자부품, 전력, 인력 수요가 동시에 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5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데이터센터 건설과 공공 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사진=AFP)
15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데이터센터 건설과 공공 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사진=AFP)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알파벳,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5대 하이퍼스케일러의 대규모 설비 투자로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고성능 컴퓨팅 장비, 냉각 설비, 전력·광케이블, 비상 발전기 등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부품 수요를 흡수하면서 소비재 가격으로 전이되는 모양새다. AI 발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급등한 메모리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5월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관련 액세서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약 15% 상승했다. 전자부품 도매가격도 같은 기간 27% 올랐다.

닌텐도, 마이크로소프트, 소니가 이미 일부 제품 가격을 올렸고 애플 제품도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WSJ에 “40년 넘게 경영을 하면서 어떤 분야에서도 이런 수준의 비용 상승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데이터센터 건설은 노동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전기·배선 설치 인력 수요가 늘면서 관련 근로자의 평균 시간당 임금은 4월 기준 전년 대비 6.5% 상승했다. 민간부문 전체 임금 상승률 3.6%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전기요금도 오름세다. 골드만삭스는 2030년까지 미국 전력 수요 증가분의 절반을 데이터센터가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영향으로 올해와 내년 소비자 전기요금이 매년 약 6%씩 오를 수 있다고 봤다.

AI발 물가 상승 압력은 관세나 국제 유가 충격과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관세와 유가는 일회성 가격 충격에 그칠 수 있지만, AI 인프라 투자는 수년간 이어지는 수요 증가 요인이다. 전미기업경제협회(NABE)에 따르면 경제학자의 81%가 향후 1년간 AI 인프라 투자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라고 답했다.

AI발 인플레이션이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이후 경제 재개(리오프닝) 국면처럼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스마트폰과 게임기 등 관련 소비재가 전체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제한적이어서다.

다만 AI가 전반적인 물가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결과를 초래할 경우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높아질 가능성이 우려된다. 욘 스테인손 UC 버클리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 상스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이것이 하나의 패턴이구나. 인플레이션이 다시 내려갈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추천 뉴스